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한국 생존 작가 중 작품 가격이 가장 비싼 작가 이우환(84·사진)의 에세이 ‘양의의 표현’(현대문학)이 출간됐다. 이 책은 일본에서 처음 출간됐을 때 “천재 예술가의 감각 그 자체를 체감할 수 있는 귀중한 책”이라는 평을 받았다.
책에 실린 ‘나의 제작의 입장’ ‘여백 현상의 회화’ ‘표현으로서의 침묵’ 같은 글은 이우환 예술의 비밀을 어느 정도 풀어준다. 그는 “내가 주목하는 것은 그림을 그리는 경우, 그것은 그리지 않은 곳과 건네는 행위라는 것이다. 이 출발점에 착목하여 나는 새로운 회화를 짜내게 되었다”고 했다. 세계 미술시장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 사조로 자리 잡은 단색화에 대해선 “단색화는 가난하고 어둡고 가혹한 상황 속에서, 그야말로 시대의 상징처럼 나타났다”며 “한국에서 단색화가 집단적으로 출현하여 존속하고 지금까지 전개되고 있는 것은 세계적인 경이이자 하나의 기적”이라고 평가했다.
‘거인이 있었다’는 작고한 이건희 전 삼성그룹 명예회장을 기리는 글이다. 그는 “내겐 이건희 회장은 사업가라기보다 어딘가 투철한 철인이나 광기를 품은 예술가로 생각되었다”고 회고했다. 선대 이병철 회장에게 “고미술 사랑은 이상하리만큼 집념이 강했고, 한국의 전통을 지극히 중요시하는 애호가적 경향이 있었다”면 이건희 회장은 “한국의 미술품이라고 하더라도 작품의 존재감이나 완성도가 높은 것을 추구하며, 언제나 전문적·예술가적 시야로 작품을 선별했다”고 비교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