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 살던 이가 거처를 찾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일자리를 얻는 건 또 얼마나 힘들겠는가. 한 교회가 이 일을 체계적으로 함께하기 시작했다. 김민기(52)씨는 2018년 전남 목포에서 서울로 오는 기차를 무작정 탔다. 노숙이 시작됐다. 김씨는 지난 18일 서울 용산구 로로카페에서 국민일보와 만나 노숙인으로 지내다가 어떻게 ‘멋쟁이’ 바리스타로 살고 있는지 들려줬다.
“서울역 지하도에서 노숙 중이었다. 어느 날 한 여자분이 컵밥을 나눠줬다. 그분과 고향 이야기를 나눴는데 ‘삼촌, 이것도 인연인데 내일 우리 사무실에 와서 상담해 보라’고 하더라.” 그는 다음 날 그 여성이 있는 사무실로 찾아갔다. “삼촌이라고 할 때 그 따스함이 너무 좋았다. 사무실에 갔는데 다들 환하게 웃으면서 나를 반겨줬다.”
여성은 서울 삼일교회(송태근 목사) 노숙인 사역을 담당하는 서울역사랑나눔부에서 봉사하는 집사였다. 김씨가 들어간 고시원은 삼일교회가 노숙인을 위해 임시 주거지로 빌린 곳이었다. 김씨는 이곳에서 윤진수(44) 목사를 만났다. 김씨는 고시원에 살면서 매일 노숙인 사역을 도왔다. 윤 목사는 2019년 임시 주거지 사역을 시작한 데 이어 노숙인을 대상으로 다양한 자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함께 자전거도 타고 족구도 하고 등산도 했다. 전문가들을 강사로 초청해 독서치료와 심리상담, 음악치료 등을 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2020년 2월부터는 제빵사, 바리스타 등 전문 기술을 가르쳤다. 김씨는 여기서 바리스타 과정을 마쳤다. 윤 목사는 카페를 해보기로 했다. 6개월간 시험 운영을 거쳐 노숙인들이 일하는 카페를 운영하기로 했다. 지난해 10월 숙명여대 근처에 로로카페를 열었다. ‘로로’는 길 위에서 만난 하나님(Lord on the Road)이란 뜻이다. 그사이 김씨는 임대주택을 얻어 독립했고 로로카페로 출근하게 됐다.
‘샘(Sam)’이라는 명찰을 달고 있는 김씨에게 뜻을 물었다. 그는 약간 쑥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마르지 않는 샘처럼 누군가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싶다. 과거에 나는 아무 희망이 없었는데 하나님을 만났고 꿈을 꾼다. 이제 나는 노숙인 전문 상담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꾼다.” 그가 지난 시간 가장 크게 배운 것은 무엇이었을까. “삶에 높고 낮음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 안에서 모두 평등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삼일교회 사역자와 자원봉사자 70여명은 함께하는 노숙인을 식구라고 부르며 한결같이 친근하게 대한다.
윤 목사는 2년 안에 카페 프랜차이즈와 감초 농장을 통해 어려운 분들에게 맞춤형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노숙인 사역을 하면서 이들은 왜 이렇게 안 변하나 하며 절망할 때도 많았다. 알코올 등 각종 중독, 가출, 폭력, 범죄…. 그러나 지금은 그게 내 옹졸한 모습이라는 걸 안다. 결국 이 모든 게 우리 삶이다. 그분들을 있는 그대로 가족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는 노숙인 사역을 하면서 복음의 본질을 체험했다. “어떻게 하면 이분들과 같이 잘 살까 고민한다. 복음의 본질은 십자가 원리의 그 사랑인 것 같다. 노숙인은 누군가 붙잡고 일으켜 세우지 않으면 일어설 수 없는 사람들이다. 자신을 버리는 사랑으로 일으켜 세워야 한다. 이 일은 십자가 은혜를 경험한 그리스도인이 해야 한다.”
삼일교회는 그동안 매주 평일 새벽 200~230명에게 음식을 나누고 노숙인과 함께 예배를 드렸다. 매주 한 차례 교회 밖으로 나가 컵밥 300인분을 제공한다. 매년 20~30명에게 임시 거주지를 제공하고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도록 돕는다. 지금은 로로카페에서 노숙인 8명에게 일자리를 주고 있다. 교회는 앞으로 다양한 사회적기업을 세워 노숙인의 사회적 자활을 도울 예정이다.
윤 목사는 난관에 부딪힐 때 송태근 담임목사가 그에게 당부한 말을 떠올린다. “진수야, 이젠 대단해 보이지 않더라도, 열매가 당장 나오지 않더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이끄시는 대로 정말 혼자서는 일어설 수 없는 어려운 분들을 체계적으로, 제도적으로 돕는 일을 하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