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예수님 고별 설교(요 14~16장)의 서론 부분입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없고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특수 본문이 고별 설교입니다. 예수님의 산상 설교(마 5~7장)와 더불어 2대 설교입니다. 구약 말씀 신명기도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들려준 고별 설교입니다.
요한복음 고별 설교는 요한복음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이를 가리켜 신학자들은 ‘복음서 신학적 정점’ ‘복음서 신학의 핵심’ ‘종교 문헌 가운데 가장 위대한 작품 가운데 하나’라고 말합니다.
요한복음 13장 말씀을 읽다 보면 변화무쌍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면서(요 13:1~20) 겸손과 섬김의 모범을 보여 주십니다. 그런데 고별 설교 앞과 뒷부분에 어떤 사건이 벌어집니까. 주님을 배신하려는 가룟 유다의 계획이 진행되고(요 13:21~30) 닭이 울기 전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다는 베드로의 부인(요 13:36~38)이 예고돼 있습니다. 배신과 부인 사이에 고별 설교 서론이 위치한 것입니다.
핵심은 무엇일까요. 바로 ‘새 계명’입니다. 함께 읽어봅시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4~35) 그렇습니다. 사랑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유다가 배신하려고 나간 뒤에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십자가 수난’을 ‘영광’으로 이해합니다. 다른 복음서를 보면 수난 부분과 영광 부분이 부활 전후로 나누어집니다. 십자가 수난 이후에 부활과 승천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수난받는 사람의 아들과 영광 받는 사람의 아들이라는 두 가지 개념을 결합, 곧 수난과 영광을 결합해 신앙의 새로운 차원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현재의 고난이 미래의 영광이 아니라, 지금 이 시각에도 영광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작은 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나, 일찍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요 13:33)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참할 수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왜 이런 말씀을 하는 걸까요. 제자들은 이 세상에 남아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닥쳐올 고난의 상황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이러한 상황, 곧 메시아의 오심과 다시 오심 사이의 기간을 살아가는 고난 받는 메시아적 교회 공동체의 상황, 또 유다와 베드로 같은 배신과 부인이 난무하는 상황 속에서 제자들이 지향해야 할 생활 지침을 사랑으로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의 삶과 죽음, 부활을 참된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 예수님의 뜻에 따라 사랑해야 합니다.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으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사랑하라는 계명입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최병학 목사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남부산용호교회에서 목회하고 있습니다. 문학과 영화, 신학과 철학, 윤리와 사상을 가로지르는 저술을 해왔습니다. 이 설교문은 삼위일체 교회력의 첫번째 설교집 ‘성경, 시대와 문화를 읽다’ 가운데 일부입니다. 최 목사는 이 책을 포함해 ‘After 코로나? With 성령!’ ‘‘짤’없는 하나님의 사랑, ‘짤’있는 이웃 사랑’ 등 3년 주기의 교회력 전체 설교를 책으로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