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100일의 허니문

입력 2022-03-21 04:10

미국에서 4선에 성공한 대통령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한 명뿐이다. 조지 워싱턴 이후 46명 가운데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이 20명에 불과하고, 3선은 아예 없으니 대단한 기록이다. 그런데 학자들은 이런 정치적 성공을 ‘루스벨트의 100일(FDR’s hundred days)’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입을 모은다. 첫 임기 취임식이 있었던 1933년 3월 4일부터 6월 12일까지 100일이 미국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4선 대통령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루스벨트가 현직 대통령 허버트 후버에게 압승한 1932년의 미국은 대공황의 암울함이 지배할 때였다. 검은 목요일 이후 2년 동안 GDP의 40%가 증발하고, 1500만명이 직장을 잃었으며 은행 1만여곳이 문을 닫았다. 그는 취임사에서 “당장 행동해야 한다(action, and action now)”고 말하고는 빠르게 움직였다. 취임식 다음 날 의회를 소집했고, 이틀째인 6일 금 거래 중단과 은행 영업정지를 골자로 하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의회가 이를 뒷받침하는 은행법을 8시간 만에 통과시키자 곧바로 긴급은행법을 제안해 은행이 다시 문을 열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취임 2주 후인 20일에는 정부 예산의 25%, 연방 공무원 임금 15% 삭감을 담은 비상경제법을 단행했다. 의회는 밤낮 없이 일하며 국가산업조정법, 농업부흥법 같이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법안을 심의·의결했다. 루스벨트는 의회에서 15번이나 연설을 했고, 거의 매일 기자들을 만났다. 이 기간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가 50만통, 백악관이 보낸 답장이 하루 8000통에 달했다.

미국 의회와 언론은 새로 뽑힌 대통령에게 잘 준비하라고 대략 100일의 허니문을 준다. 허니문은 법에 없는 관례일 뿐이다. 100일로 굳은 것은 누구보다 취임 직후를 잘 활용한 루스벨트의 영향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때부터 빛이 많이 바랬지만 여전히 흔들리지 않는 전통이기도 하다. 대통령 당선인마다 허니문은커녕 비터문(bittermoon)을 어렵게 통과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부러운 일이다.

고승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