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31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임기가 끝나지만 후임 인선이 신구 권력 교체기와 맞물려 있다. 지난 16일로 예정됐던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오찬 회동에서 후임 논의가 기대됐으나 회동 불발로 한은 총재 업무 공백이 불가피해졌다. 과거 총재의 내정부터 청문회 통과까지 짧게는 16일이 걸렸는데, 이 총재 임기까지 열흘 밖에 남지 않아 4월 1일 취임은 사실상 물건너 갔다.
그렇다고 마냥 지체될 분위기는 아니다. 5월10일 새 정부 출범까지 기다리기에는 한은 업무 공백이 너무 길어진다. 물리적으로 문 대통령이 후임 총재 후보를 지명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는 게 한은과 정부 안팎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임기가 남은 문 대통령에 지명권이 있지만 후임 총재가 4년 임기 거의 전부를 윤 당선인과 호흡을 맞춰야 한다는 점이 딜레마다. 그래서 윤 당선인이 추천하는 인사를 문 대통령이 지명하는 절충안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20일 “양쪽이 서로 불만이 없는 인사가 낙점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윤 당선인과 문대통령간 오찬 회동 무산 원인 중 하나가 한은 총재 내정권을 둘러싼 갈등설도 거론되고 있지만 확인된 바는 없다. 한 인수위 관계자는 한은의 정책권한이 정치적 사안이 크지 않은 통화정책에 한정돼 있어 양측이 첨예한 갈등을 빚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며 갈등설을 일축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명한 이주열 총재를 문 대통령이 연임 때 재기용한 것도 이런 절충안을 뒤받침하는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따라서 윤 당선인 입장에서도 문 대통령측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인사를 선호하고 있는 데 정치권과 금융권에서는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이 적임자로 떠올랐다.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조사국장, 인수위 경제1분과 소속 김소영 서울대 교수와 신성환 홍익대 교수도 하마평에 올라 있다. 내부 인사로는 윤면식 전 부총재, 이승헌 부총재도 거론된다.
하지만 후임 총재를 윤 당선인이 추천하는 모양새를 갖추더라도 다음 달 내각의 윤곽이 드러날 때까지 인선절차가 미뤄질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다음달 14일 금융통화위원회가 열리기 전까지 신임 총재가 취임하지 못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경우 의장 직무 대행이 금통위 의장 역할을 수행하는데, 금통위는 오는 24일 회의에서 4월1일~9월30일 의장 직무를 대행할 위원을 결정할 예정이다. 금통위 의장 직무 대행 위원은 정해둔 순서에 따라 맡는다. 현재는 서영경 위원(2021년 10월∼2022년 3월)이고, 다음 차례는 주상영 위원으로 알려졌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