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봄봄봄봄 봄이 왔어요

입력 2022-03-21 04:07

이사한 곳은 버스로 이십여 분 거리에 대학교가 있는데 청년보다는 노인이 많이 보인다. 청년들은 아마 대부분 기숙사에 살거나, 아니면 나와 이동 경로가 겹치지 않는 모양이다. 유교가 유행했던 나라에서 자라서인지 노인을 보면 모르는 사람이어도 자꾸 인사를 하게 된다. “안녕하세요.” 고개를 꾸벅하고 말하면 대부분 대꾸는 없다.

얼마 전 호떡을 사러 집 앞 시장에 가는 길이었다. 부쩍 따뜻해진 날씨에 옷을 가볍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고개를 푹 숙이고 무언가 구경하고 있었다. 인도와 차도가 구분되지 않은 곳이었다. 가까이 가니 부부처럼 보이는 두 중년의 상인이 자신의 상점 앞에서 꽃과 모종을 잔뜩 팔고 있었다. 그들은 원래 주방 가전을 비롯한 각종 가전과 가구를 취급한다. 유리문 앞에는 먼지로 뒤덮인 중고 냉장고가 쌓여 있다. 한 손님과의 대화로 미루어보아, 꽃 판매는 봄이 오면 잠깐 벌이는 게릴라 사업인 듯했다. 그날 꽃과 모종 앞에는 대여섯 명의 중년과 노년 남녀가 서 있었다. 그중 한 명이 이렇게 말했다. “난 봄만 되면 그렇게 가슴이 설레어.” 그러자 주인 중 한 명이 말했다. “언니가 사는 게 행복해서 그래.” 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몇 마디의 대화를 더 했다.

꽃을 아주 좋아해 본 기억은 없지만 봄이 오면 산란하던 마음이 살랑인다. 여름을 예고하기 때문이다. 나는 빽빽한 초록의 풀들이 단체로 고성을 지르는 것 같은 여름을 좋아한다. 따뜻한 날씨에는 각종 병증이 줄어들어 외출이 즐거워진다. 겨울 동안 상실한 자기애와 인류애를 회복하기도 한다. 겨울을 예고하는 가을에는 마음이 살랑이기보단 울렁인다. 이제 곧 길가에는 출처를 알 수 없는 평상과 의자에 걸터앉는 노인이 늘어날 것이다. 그들은 주로 지팡이나 손수건을 쥐고 입을 벌린 채 허공을 응시할 텐데, 나는 벅찬 가슴 때문에 그들을 유난스레 주목할 것이다. 그리고 꾸벅 인사한 다음 대부분 대꾸는 받지 못할 것이다.

이다울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