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선거였다. 정당의 정책보다 더 많은 시간을 후보의 자질 논란으로 보냈다. 논리도 없는 마타도어가 넘나들었다. 그렇게 대선이 마무리됐고, 새 지도자가 선택됐다. 축제가 돼야 할 선거가 진흙탕이 됐으니 기대보다 걱정이 앞선다.
무엇보다 분열을 넘어야 한다. 한반도 밖은 어느 때보다 치열한 패권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은 나날이 치열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국제질서의 혹독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전쟁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리고 평화를 지킬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과 그런 평화로운 세상, 강한 나라를 모두 함께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우리가 꿈꾸는 나라가 될 수 있을까?
첫째, 통합이다. 사회적 통합의 정치를 지향해야 한다. 기준이 있고 공정해야 한다. 선과 악으로 구분하는 갈라치기는 하지 않아야 한다. 편을 가르고 상대를 공격하는 일은 가장 편리한 정치 방식이다. 정의, 개혁도 통합의 틀을 넘어서는 안 된다. 스스로 기득권임을 자각하지 못했고, 전문가의 조언과 시민사회 그리고 언론의 비판을 수용하지 않은 결과를 목격했다. 공존을 추구해야 할 우리 사회는 적대와 증오, 분열과 배제의 논리가 지배하는 곳이 됐다. 새 정부는 좁은 정체성의 갈라치기 정치가 아니라 소통하는 넓은 성격의 국가 정체성을 구축하는 아우르기 정치를 펼쳐야 한다.
둘째, 국수주의적 포퓰리즘 선동과 이벤트 정치를 지양해야 한다. 그간 경제와 방역, 외교 문제에 있어 책임이 크다. 책임져야 할 정책 실패를 그릇된 애국주의로 일거에 대치해 버리는 정치적 효과를 지속적으로 생산했다. 자영업자 비율을 감안해 ‘최저임금 인상을 점진적으로 하자’는 주장은 가진 자의 논리로 폄하했다. 코로나 초기 전문가들의 중국발 입국자 금지 요구에는 중국의 어려움이 우리의 어려움이라 선동했다. 대북 외교의 저자세에 대해 비판하면 반평화세력으로 매도했다. 이런 정치적 효과는 정치적 팬덤으로 이어져 공적 공간을 사적 욕망의 장으로 변형시켰다. 민주적 규범의 핵심인 상호 존중과 권력 절제의 책임 있는 정치가 돼야 한다.
셋째, 검찰의 정치적 독립이 충분히 보장돼야 한다. 문재인정부는 ‘검찰의 정치화를 막는 개혁을 주도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법리가 뒷전으로 밀렸다. 진영의 입맛에 따라 친정부 인사를 수장으로 앉혀 선택적 정의를 양산했다. 공소시효가 지났음에도 진상 조사를 지시하는 기획 사정을 하기도 했다. 검찰의 정치화를 막겠다며 설립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통치 세력의 기득권 논리를 보호했고, 반대하는 일반인들의 개인정보까지 사찰했다. 법의 잣대는 공정해야 하고, 정치가 간여해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기득권의 논리가 아니라 소수자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넷째, 권력은 절제돼야 한다. 정치는 법과 원칙에 따라 균일하게 작동돼야 한다. 소수당을 보호하고, 다수당의 전횡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국회선진화법이 무력해지는 것을 보았다. 거대 여당의 출현으로 다당제는 무색해졌다. 소수 정당의 존재감은 위성 정당의 출현으로 사라져 버렸다. 정치적 이해를 위한 법을 통한 정치가 아니라 법에 의한 통치가 사회 운영의 기본이 돼야 한다. ‘적폐 청산’은 공정해야 한다. ‘내로남불’이어서는 안 된다. 정치적 반대에 대해서는 균형이 있어야 한다. 권력으로 언론을 이용해선 안 된다. 부동산을 비롯한 경제적 이권에 대해서도 공정한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 법치보다 진영이 우선이 됐던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진영에 속하면 비판해서는 안 되는 성역, 동조해서는 안 되는 금기 영역이 존재했던 잘못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진영으로 만들어진 성역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리게 할 것이다.
카를 마르크스는 ‘역사는 한 번은 희극으로 또 한 번은 비극으로 반복된다’고 했다. 정치는 세상을 한순간에 바꾸는 것이 아니다. 점진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것이다. 새로운 정부는 승리에 도취하지 말고 공정과 상식이라는 초심을 잊지 않아야 한다. 자유주의자 존 로크의 ‘타불라라사’가 말하듯 하얀 석판에 그간 경험해 보고 싶지 않았던 사실들을 하나하나 적어가며 누구라도 경험해보고 싶은 상생의 공동체 만들기를 하나하나 고민해야 한다.
김성수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