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 푸틴의 전쟁과 北의 동조

입력 2022-03-21 04:08

푸틴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시작한 지 4주가 된다. 나토의 동진, 돈바스 지역의 러시아인 보호,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역사적 권리 등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할 수밖에 없었던 여러 가지 이유가 난무한다. 더불어 미국이 소환돼 러시아의 ‘정당한’ 안보적 우려를 무시한 것이 원인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제국의 부활, 천연자원과 식량·인구 등 우크라이나를 필요로 하는 푸틴의 야심도 회자된다.

그러나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푸틴이 벌이는 전쟁은 부당하다. 고대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로 시작된 ‘정당한 전쟁론’(정전론)은 논의를 정교화해 국제사회의 보편적 규범과 원칙으로 자리매김했다. 정전론은 ‘전쟁 개시의 정당성(jus ad bellum)’과 ‘전쟁 수행의 정당성(jus in bello)’으로 나뉘지만 상호보완적이다. 수단만 정당하다고 정당한 전쟁이 될 수 없고, 역으로 목적이 정당하다고 전쟁 중 모든 행위가 용납될 수 없다.

전쟁 개시의 정당성 중 핵심은 정당한 이유이다. 침략으로부터의 방어, 침략으로 강탈된 영토의 회복, 인간의 존엄성 회복을 위한 인도주의적 개입 등이 이유로 상정된다. 부연하면 전쟁의 목적은 팽창, 영광, 약탈, 말살 등이 아닌 불의와 공세에 대응해 잃어버린 평화를 되찾고 정의를 세우는 것이어야 한다. 또한 정전론은 전쟁을 최후의 수단으로 간주해 모든 비폭력적 노력이 실패한 후 사용해야 함을 강조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다.

전쟁 수행의 정당성은 전쟁을 수행하는 국가가 전쟁 중에 취하는 행동의 옳고 그름을 따진다. 가장 핵심적인 원칙은 민간인 공격 불가로서 비전투원과 일반 시민, 군 시설과 관련 없는 민간 시설 등이 공격의 직접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수단의 비례성도 강조한다. 재래식 공격에 대해 대량살상무기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 유엔 기관인 인도주의업무조정국(OHCA) 통계에 따르면 지난 16일 기준 우크라이나 민간인 사상자는 2149명이고 민간 시설 폭격으로 320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푸틴은 침공 4일 만에 핵무기 운용부대에 경계 태세 강화를 지시한 바 있다. 러시아가 비인도적 대량살상무기인 백린탄을 사용했다는 증언도 나온다.

북한은 부당·불법·비윤리·비도덕적인 푸틴의 전쟁에 동조한다. 대외적으로 세 번의 견해 표명이 있었다. 지난달 26일 ‘국제정치학회 연구사 리지성’ 명의로 “우크라이나 사태 역시 로씨야의 합법적인 안전상 요구를 무시하고 세계 패권과 군사적 우위만을 추구한” 미국에 근원이 있다고 강변했다. 이틀 후 외무성 대변인의 기자 질문 답변 형태로 발표한 내용도 “강권과 전횡을 일삼고 있는 미국과 서방”만 부각한다. 지난 1일 김성 유엔 주재 북한대사도 북한 외무성 답변을 되뇌었다. 미국 책임론만 부각하면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행위에 대한 평가는 전혀 없다. 북한은 아직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실을 국내에 보도하지 않고 있다.

북한 대외정책의 근간은 ‘자주’로서 타국, 특히 강대국이 다른 주권국가에 간섭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북한 문건을 보면 “자주정치는 나라들 사이의 특권을 반대하고 령토안정과 주권에 대한 존중, 불가침, 내정 불간섭, 평등과 호혜의 원칙에 기초”해야 한다. 그런데도 북한은 이를 어긴 러시아 편에 섰다. 지난 2일 유엔총회에서 러시아군 철수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진 5개국 중 하나가 됐다. 북한은 러시아가 국제질서를 흔들수록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커짐을 계산 중일 것이다. 원칙과 명분은 이해를 위해 언제든지 버릴 수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한국이 상대하는 북한의 실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