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고양이들의 안부를 묻다

입력 2022-03-21 04:05

흰 고양이 공순이는 머리, 등, 엉덩이에 회색과 갈색 반점이 섞여 있다. 이름을 지어준 건 둔촌종합상가 천우당 약국의 나이 지긋한 약사다. 공순이는 약국을 제집 지키듯 지킨다. 약사는 “(공순이가) 아프면 치료 좀 해 주고, 오면은 재롱떠는 것 좀 보고. 굉장히 순하고 점잖다”며 “손님이 와도 그냥 딱 공손하게 있다. 공자 같기도 하고 아주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이사 가는 학생들은 공순이에게 작별 인사를 건넨다.

재건축이 예정된 서울 둔촌주공아파트에 주민은 이제 10여 가구뿐이지만 고양이는 250마리나 남아 있다. 인적 드문 아파트 단지 곳곳에서 유유자적하는 이들은 ‘길냥이’로 불리는 일반적인 길고양이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고양이들은 두려움 없이 인간에게 접근한다. 둔촌주공 주민들과 마치 이웃처럼 함께 살아왔기 때문이다. 고양이들에게 이곳은 천국이다.

17일 개봉한 정재은 감독의 다큐멘터리 ‘고양이들의 아파트’는 인간이 아닌 고양이들의 시선으로 재건축 이슈를 바라본다. 고양이들에게 둔촌주공은 오랜 삶의 터전이었다. 아파트 철거가 시작되면 고양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주민들은 전문가와 함께 ‘둔촌주공아파트 동네 고양이의 행복한 이주를 준비하는 모임’(둔촌냥이 모임)을 만들어 고양이 이주 작전에 나선다. 사람들은 고양이들의 사진을 찍고 82B, 146A와 같이 숫자와 번호를 조합해 명단을 만든다. 철거를 앞둔 아파트 지하실에 새끼를 낳지 않도록 중성화 수술을 시키고, 입양될 때까지 임시보호를 자청한다. 하지만 다른 곳으로 옮겨놔도 고양이들은 ‘위험한 천국’으로 다시 돌아오고야 만다. 아파트 단지에서 고양이를 나오게 하려고 밤낮없이 뛰어다니던 일러스트 작가 김포도(예명)는 안타까워하며 말한다. “물어보고 싶어요, 여기 계속 살고 싶냐고.”

다큐멘터리에선 고양이를 걱정하는 따뜻한 손길과 쓰레받기로 고양이 사체를 옮겨 청소차량 비닐봉지에 담는 차가운 손길이 교차한다. 둔촌냥이들은 주민 보살핌을 받았지만 도시의 많은 길냥이가 길에서 생명을 잃거나 누군가에게 붙잡혀 학대를 당한다. 밥그릇에 쥐약을 살포하고, 털에 염색테러를 하고, 상처를 입히고, 잔인하게 죽이는 무자비한 사건이 차고 넘친다.

고양이만의 일은 아니다. 인간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생명체를 함부로 다뤄왔다. 괴롭히고 버리고 서식지를 파괴했다. 인간에겐 그럴 권리가 있다는 듯이. 경찰청에 따르면 2010년 78명이었던 동물보호법 위반 사범 수는 2020년 1000명을 넘어섰다. 반려동물을 위한 테마파크를 만드는 시대에 유기동물들의 생명은 사뭇 허무하게 사그라진다. 앞뒤가 맞질 않는다.

지난해 동물보호법이 개정됐다. 동물을 잔인한 방법으로 죽음에 이르게 한 행위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길냥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줄이기 위해 서울시는 올해 11월까지 매달 2회 ‘중성화날’을 열기로 했다. 길고양이 문제는 더 많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반려견 4마리와 반려묘 3마리를 키운다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어떤 동물보호 정책을 선보일까. 윤 당선인은 선거 공약을 통해 동물학대 예방 및 처벌을 강화하고 동물보호교육 활성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반려동물 보호체계를 정비하겠다고도 했다.

법을 강화하는 것만큼 중요한 건 인식의 변화다. 김포도 작가는 둔촌냥이 이주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유에 대해 “그냥 이렇게 죽어야 할 애들은 아닌 것 같아서”라고 말한다. 모임에 참여한 동물권단체 카라의 전진경 대표는 “고양이 입장에서 그린 만화에서 사람은 캔따개”라는 우스갯소리를 전한다. 인간의 오만함을 꼬집은 거다.

둔촌주공 재건축은 ‘단군 이래 최대 건축사업’으로 불린다. 인간들은 각자의 이익을 위해 부단히 계산기를 두드렸다. 다큐멘터리 촬영이 끝나고, 2020년 둔촌주공은 철거됐다. 고양이들은 모두 잘 지내고 있을까.

임세정 문화체육부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