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사전투표 부실 관리로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17일 “6·1 지방선거를 흔들림 없이 준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실상 사퇴 거부 의사를 밝힌 것이다.
노 위원장은 이날 선관위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20대 대선의 확진·격리자 사전투표와 관련해 국민께 불편과 실망을 드려 송구하다”며 재차 사과했다. 이어 “위원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중차대한 선거를 관리함에 있어 안일했다는 지적을 수용하고 공감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선관위 안팎에서 제기된 사퇴 요구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노 위원장은 “지금 지방선거를 76일 앞에 두고 있다”며 “사전투표 부실 관리의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고 조직을 쇄신해 신속하게 지방선거를 준비·관리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방선거를 흔들림 없이 준비하기 위해서는 위원장으로서 신중할 수밖에 없고 오히려 그것이 책임을 다하고자 함임을 이해해주실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사퇴보다 지방선거 준비에 집중하는 게 위원장으로서 책임을 지는 길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노 위원장은 사전투표 부실 관리에 대한 책임 규명과 중앙사무처 조직 슬림화, 지방선거 관리 대책 마련을 신속히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동안 저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일지라도 제대로 고쳐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구성원들의 의견을 다양한 방법으로 수렴하고 합리적인 수습 방안을 고민했다”며 “현재의 위기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국민의힘은 노 위원장을 향해 맹공을 퍼부으며 사퇴를 촉구했다. 허은아 수석대변인은 오전 논평에서 “이제 ‘노정희 선관위’는 밖으로는 국민의 신뢰를 잃었고, 안으로는 조직원들의 신망을 상실했다”며 “더 버틸 명분이 무엇이 있겠는가”라고 따져 물었다. 이어 “선수와 관중 모두가 심판의 경기 운영 능력과 판정을 못 믿겠다는데, 심판 홀로 끝까지 경기장에 남아 경기를 하겠다고 몽니를 부리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대한변호사협회도 이날 성명을 내고 “노 위원장은 부실 선거관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즉각 사퇴하라”고 압박했다. 변협은 “민주주의의 꽃이자 국민주권의 초석인 선거에서 부실과 혼란이 발생했다는 사실은 지극히 엄중한 사태로, 적당히 넘어갈 일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다만 선관위 일각에서는 노 위원장을 옹호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노 위원장 사퇴 시 지방선거 준비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한 선관위원은 “위원장 유사시 역할 대행인 상임위원이 현재 공석인 상태”라며 “위원장이 물러나면 각종 의사결정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선관위는 이날 전체회의를 열고 전날 사의를 표명한 김세환 사무총장의 면직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 박찬진 사무차장이 후임 사무총장이나 총장 대행을 맡아 지방선거 실무를 책임질 전망이다.
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