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오륜교회 정송이 사모가 인터뷰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남편 김은호 목사를 기도로 내조하면서 한국교회 사모들을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일에 앞장서 왔다. 최근 서울 송파구 오륜교회에서 만난 정 사모는 ‘행복한 목회’를 거듭 강조했다. 인터뷰 내내 아내 곁을 지킨 김 목사는 꾸밈 없이 솔직한, 때론 호탕하게 웃는 아내를 보며 “아내의 밝은 웃음과 섬김이 오륜교회의 성장 비결이었다”고 귀띔했다.
정 사모는 조선대 간호학과 재학 중 대학생성경읽기선교회(UBF)를 통해 하나님을 만났다. 졸업 후 교련 교사가 돼 광주에서 서울로 상경한 그는 신앙생활을 위해 집과 가까운 교회에 출석했다. 그곳에서 청년부 담당 전도사에게 첫눈에 반했다. 그 사람이 바로 김은호 목사였다. 정 사모는 “깨끗한 첫인상에 반해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했다.
두 사람의 교제에 양가 집안은 발칵 뒤집혔다. 교육자 집안이었던 정 사모 집에서는 “목회자 사위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대했고, 믿음의 가문이었던 김 목사 집에서는 “신앙이 없는 가정의 자매는 안 된다”는 게 이유였다.
정 사모는 결혼 승낙을 받기 위해 일 년 동안 저녁을 금식하며 하나님께 매달렸다. 이 모습을 보다 못한 김 목사가 양가에 “두 사람 다 성인이니 결혼하겠다”고 선언했다. 1987년 두 사람은 부부가 됐다. 결혼 후 친정 식구 28명이 하나님을 영접하고 신앙을 갖게 됐다.
사모가 된 뒤 가장 힘든 일은 무엇이었을까. 정 사모는 “새벽 기도를 가야 하는데 젊은 날에 잠이 많아서 힘들었다. 무엇보다 성도들과 가까이할 수 없는 인간적인 외로움이 가장 컸다”고 고백했다.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말씀과 기도 그리고 남편이었다. 정 사모는 “사역이 아무리 바빠도 남편은 가정이 무너지면 의미가 없다고 여겼다”며 “아들과 딸도 아빠와 함께한 추억을 소중하게 기억한다. 젊은 목회자들도 사역하며 이 행복을 놓치지 않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두 사람은 1989년 오륜교회를 개척했다. 월세 20만원의 상가를 얻어 예배당 겸 사택으로 사용했다. 김 목사는 “하루는 아내가 출근해야 하는데 버스표가 없어서 발을 동동 구른 날도 있었고 아기 분유를 사지 못한 날도 많았다”며 “아내의 눈물과 헌신은 말로 다 표현이 안 된다”고 말했다.
정 사모는 상처 투성이인 한국교회 사모에도 관심을 갖고 2007년부터 영적 회복과 충전을 위한 ‘사모 리조이스’, 홀사모를 위한 ‘for you’ 사역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6500여명의 사모가 다녀갔다. 유머와 회복 그리고 치유가 있는 이 행사를 통해 사모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회복을 누린다. 정 사모는 “하나님이 주신 비전과 사명이 다르다”며 “사모님들이 비교하거나 경쟁하지 말고 맡겨주신 자리에서 행복하게 사역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