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어린이를 비롯해 수백명의 민간인이 대피한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의 한 극장을 폭격했다고 뉴욕타임스 등이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곳 피란민들은 러시아군의 공습을 막기 위해 극장 앞뒤 공터에 러시아어로 ‘어린이’(дети)라는 글자를 크게 써 놨지만 참극을 피하지 못했다.
보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외교부는 러시아군이 마리우폴 극장에 강력한 폭탄을 떨어뜨렸다며 이를 전쟁 범죄로 규정했다. 마리우폴 시의회도 이날 텔레그램에 올린 성명에서 “러시아가 수백명의 사람들이 대피해 있는 드라마 극장을 고의로 파괴했다”고 비난했다.
해당 극장은 마리우폴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대피해 있던 곳이었다. 마리우폴 시장의 고문인 페트로 안드리우슈첸코는 “잠정 데이터에 따르면 1000명 이상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시의회 관계자들 역시 “어린아이를 포함해 임산부 등 민간인 수백명, 많게는 1000명 이상이 대피해 있었다”고 전했다. 이들은 “이 도시와 평화로운 주민들을 파괴하고 있는 러시아 침략자들의 잔혹함을 묘사할 수 있는 단어를 찾는 건 불가능하다”며 강하게 비난했다.
미국 위성 통신 업체 ‘맥사 테크놀로지’가 이틀 전 찍은 극장 주변 위성사진을 보면 극장 앞과 뒤 공터에 러시아어로 어린이(дети)라는 글씨가 크게 적혀 있다. 혹시 있을 러시아군의 공중 폭격에 대비해 극장 건물에 어린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려 한 것으로 보인다.
당국은 정확한 사상자 수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지만, 내부에 있던 민간인들의 피해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현지 사진을 보면 공격당한 극장 건물 일부가 완전히 붕괴돼 있다. 마리우폴 당국은 “극장 입구가 건물 잔해로 막혀 대피자들의 운명을 알 수 없다”며 “극장 주변으로 폭격이 끊이지 않아 수색 작업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마리우폴은 지난 1일 러시아군 공격이 시작된 이후 보름 이상 무차별 폭격에 시달리고 있다. 식수, 난방, 전기 공급이 끊기고 보름 넘게 외부와 단절된 상태다. 현재까지 25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파악된다.
러시아는 마리우폴 극장에 대한 공습을 전면 부인했다. 이들은 오히려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아조프 대대’에 의해 건물이 파괴됐다고 주장했다.
한편 러시아군에 납치됐던 남동부 도시 멜리토폴의 이반 페도로프 시장은 러시아군 포로 9명과 교환하는 조건으로 풀려났다. 키릴로 티모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보좌관은 텔레그램을 통해 “페도로프 시장은 안전하다”며 “대통령이 방금 그와 대화를 나눴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국영 통신국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자신의 사무실에서 웃으며 페도로프 시장과 통화 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티모셴코 보좌관은 “한 가지만 말하고 싶다. 우리는 결코 우리 국민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