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볼쇼이 발레단 수석 무용수 올가 스미르노바(30)가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비판한 뒤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으로 이적했다.
스미르노바는 16일(현지시간)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을 통해 자신의 이적을 발표했다. 그는 “언젠가는 볼쇼이 발레단을 떠날 생각이었는데, 현재 상황이 사퇴를 앞당겼다”고 밝혔다. 테드 브랜슨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은 “위대한 무용수인 스미르노바와 함께할 수 있어 기쁘다”고 전했다. 스미르노바는 다음 달 3일 클래식 발레 ‘레이몬다’의 주역으로 네덜란드 관객과 처음 만난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난 스미르노바는 2011년 마린스키 발레단 부속 바가노바 발레학교를 졸업한 뒤 모스크바 볼쇼이 발레단의 솔리스트로 입단했다. 2016년 프리마 발레리나가 된 그는 국제 갈라 무대에 자주 초청되는 스타 무용수 중 하나이지만,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러시아의 여론 탄압과 검열의 와중에도 반전 메시지를 냈다. 그는 텔레그램을 통해 “내 영혼을 다해 이번 전쟁을 반대한다. 다른 러시아 무용수도 같은 생각”이라며 “내 할아버지가 우크라이나인이라는 게 전쟁에 반대하는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나는 나 자신이 러시아를 부끄러워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전쟁으로)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대부분 군사적 충돌 지역에 있지 않지만 이런 세계적 재앙에 무심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뉴욕타임스는 “스미르노바의 탈퇴 결정은 러시아 발레계에 폭탄과 같다. 스미르노바는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떠났다”는 러시아 무용평론가 레일라 구치마조바의 텔레그램 메시지를 전했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마린스키 발레단과 볼쇼이 발레단 등 러시아 양대 발레단 소속 무용수의 탈퇴가 잇따르고 있다. 이탈리아 출신의 자코포 티시, 브라질 출신의 다비드 모타 소아레스, 영국 출신의 잰더 패리쉬 등이 탈퇴했다. 러시아인으로는 스미르노바가 처음이다.
서구 언론은 스미르노바가 러시아 국적으로 해외에 나갔다는 점에서 냉전시대 구 소련 무용수들의 망명을 떠올리게 한다는 기사를 잇달아 내보내고 있다. 1961년 키로프 발레단(현 마린스키 발레단) 소속이던 루돌프 누레예프가 프랑스를 방문했다가 망명한 것을 시작으로 70년 나탈리아 마카로바, 74년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등 구 소련 발레계 인사 다수가 서방으로 망명했다. 이는 당시 소련에 대한 서방의 승리로 간주됐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