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대통령과 당선인의 갈등

입력 2022-03-18 04:10

차기 대통령 당선 이후 취임까지는 신구 권력이 동거하는 시기다. 권력의 균형추는 새로운 권력으로 쏠리지만 대통령도 합법적 권한을 행사하고픈 게 인지상정이라 불안한 동거가 되기 십상이다. 현재와 같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처음 구성된 게 1992년 말 김영삼 당선인 시절이고, 2003년 2월 당선인으로서의 지위와 권한을 명확히 하고 대통령직의 원활한 인수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 법률이 제정됐어도 대통령과 당선인 측의 셈법이 달라 갈등을 피하기 어려웠다. 정권이 재창출될 땐 정도가 덜하지만 정권 교체기에는 파열음이 크기 마련이다.

승자가 권력을 독식하는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신구 권력이 역지사지 자세로 자제력을 발휘하지 않는 한 갈등은 어쩌면 필연이다. 2020년 미국 대선 이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조 바이든 당선인과의 갈등은 미국이 민주주의 선진국이 맞나 회의가 들 정도로 심각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선 결과에 불복해 지지자들의 의회 난동 사태를 조장하다시피 했고, 정권 이양에 거의 협조하지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에도 불참해 마지막 인수인계 절차인 핵가방 전달을 거부하는 등 엄청난 뒤끝을 보여줬다.

16일 예정됐던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 간 회동 무산도 뜨는 해와 지는 해 간 갈등이 만만치 않음을 시사한다. 예고해 놓고 만남이 불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공석인 감사위원 두 자리와 임기가 이달 말 끝나는 한국은행 총재 인사권을 사실상 누가 행사할지에 대해 이견이 컸고 당선인 측이 이명박 전 대통령·김경수 전 경남지사 사면 빅딜설과 민정수석실 폐지 근거로 현 정부 책임론을 제기해 청와대를 자극한 게 빌미가 됐을 것이란 추측이 나온다. 극심한 진영 대결과 초박빙 승부가 양측의 기세 싸움으로 이어진 것 같다. ‘실무협의’가 마무리되면 만남이 이뤄질 테지만 이번 사태는 신구 권력의 갈등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차기 정부에서도 국민이 기대하는 ‘국민 통합’은 구호에 그칠 것이란 복선 같아 우려스럽다.

라동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