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퍼스트의 트럼프에
글로벌 리더십 위축됐던 미국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맞서
세계 결집하며 리더 입지 회복
이 전쟁이 어떻게 끝나든지
포스트 우크라이나의 세계는
새로운 질서로 재편될 상황
그속에서 국익 지키려는 각국
움직임이 분주해지게 됐다
글로벌 리더십 위축됐던 미국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맞서
세계 결집하며 리더 입지 회복
이 전쟁이 어떻게 끝나든지
포스트 우크라이나의 세계는
새로운 질서로 재편될 상황
그속에서 국익 지키려는 각국
움직임이 분주해지게 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려던 러시아에 대응한 방식은 특이했다. 미국 정보망에 포착된 러시아 군사정보를 세상에 공개해버렸다. 중계방송하다시피 했다. “러시아가 17만 병력을 우크라이나 국경에 배치했다.”(지난해 12월 3일) “군사행동의 명분이 될 소요사태를 일으키려 공작조를 투입했다.”(1월 14일) “젤렌스키 대통령을 축출하고 세우려는 친러 정권의 수장까지 이미 정해 놨다.”(1월 22일) “러시아군이 먼저 공격당한 것처럼 자작극을 벌이려 한다.”(2월 11일) “침공 디데이를 2월 16일로 잡았다.”(2월 13일)
정보를 다루는 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상황은 내가 입수한 정보가 공개되는 것이다. 정보를 넘겨준 이들이 위험해지고, 유출된 쪽에서 보안을 강화할 테니 일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예전에는 가까운 동맹국에만 은밀히 공유했던 내용이 이번엔 세계 모든 언론에 실렸다. KGB 스파이 출신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당황했을 것이다. 전공 분야인 정보전에서 선제공격을 당한 셈이니. “훈련일 뿐이다” “미국이 긴장을 부추긴다” “외교는 열려 있다”면서 부정하기 바빴다. 결정적인 헛발질은 2월 16일에 나왔다. 침공일로 꼽혔던 날 갑자기 철군을 발표했는데, 위성사진을 통해 거짓임이 드러났다. 2월 24일 전면 공격을 강행하면서 푸틴은 공식적으로 거짓말쟁이가 됐다.
만약 푸틴이 실제로 철군했다면, 정보전 패배를 인정하고 훗날을 도모하면서 미국의 정보를 결과적으로 틀린 것이 되게 했다면, 바이든이 “(침공하려 한다고) 확신한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세계에 내놓은 미국의 메시지는 신뢰에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그 위험을 감수한 파격적 정보 공개는 두 가지를 겨냥하고 있었다. 정보망과 신뢰도에 타격을 입더라도 전쟁을 막거나, 전쟁을 막지 못하더라도 러시아가 아닌 미국의 말을 세계가 믿게 하거나. 푸틴은 최강의 가짜뉴스 부대를 갖고 있다. 2016년 미국 대선에 개입해 여론을 쥐락펴락했다. ‘우크라이나 침공’ 대신 ‘우크라이나 전쟁’이라 불리게 만드는 여론전쯤은 일도 아니라고 여겼지 싶다. 남의 전쟁에 끼어들기 싫은 나라들이 러시아편을 들진 않더라도 대놓고 반대쪽에 서지 않을 명분만 주면 됐었다. 푸틴이 잘하던 그 작업이 바이든의 정보 공개에 막혔고, 세계는 미국의 말을 믿게 됐다.
이후 벌어진 상황은 우리가 지켜본 대로다. 푸틴은 이렇다 할 이야기를 내놓지 못한 채 진격명령을 내렸다. 전쟁은 부인할 수 없는 침공이 됐고, 우크라이나의 항전에 막혀 무차별 살상전을 벌인 푸틴은 전범이 됐다. 다른 나라의 개입을 억제할 가짜뉴스란 무기가 무력화되자 그는 핵무기를 갖고 위협했다. 이제 미치광이 독재자가 됐다. 2차 대전 이후 여러 전쟁이 있었지만, 세계가 이렇게 일방적으로 한 쪽 편에 선 적은 없다. 독재자의 검은돈도 맡아주던 중립국 스위스가 러시아 자산 동결에 동참했다. 러시아 가스에 의존하는 독일이 신규 파이프라인을 끊었다. 러시아의 침공을 겪었던 핀란드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보냈다. 러시아 금융을 마비시킨 스위프트 퇴출은 일사천리였다. 기업·예술·스포츠 등 민간에서도 푸틴의 반대편에 서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것은 미국이 제시한 이야기, 러시아의 침략행위에 맞서 뭉쳐야 한다는 메시지에 동의한다는 뜻이었다.
지난 몇십년간 국제무대에서 미국의 리더십은 줄곧 약해져 왔다. 이슬람과 갈등하며 테러의 타깃이 됐다. 이라크전쟁은 명분이 부족했고, 아프가니스탄전쟁에선 늪에 빠졌다. 월가의 탐욕은 금융위기를 세계에 퍼뜨렸고, 중앙은행은 달러를 마구 찍어대며 기축통화 지위를 남용했다. 내부의 극심한 양극화는 “아메리카 퍼스트”의 트럼프를 낳았다. 그의 미국은 리더 역할은커녕 중국을 찍어 누르느라 바빴을 뿐이다. 이랬던 미국과 전혀 다른 미국을 우리는 지금 보고 있다. 세계에 어젠다를 제시하고 각국을 결집해내는 역량이 우크라이나에서 입증됐다. 바이든이 취임사에서 했던 말처럼, 미국이 돌아왔다.
전쟁이 어떻게 끝나든 포스트 우크라이나의 세계는 새로운 질서로 재편될 것이다. 고립주의는 미국의 선택지일 리 없다.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입지와 이익을 지키려 할 테다. 각국이 국익을 찾는 방정식도 미·중 G2 구도보다 까다로워지게 됐다. 그 숙제가 한국은 새 정부에 주어진다. 지금부터 고민해야 늦지 않을 것이다.
태원준 논설위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