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은 곱씹어보면 참 무서운 말이다. 비꼬아보면 ‘서당개도 하는데 사람인 네가 못하냐’는 꾸짖음으로도 읽힌다. 지구에서 가장 발달한 두뇌를 보유해 만물의 영장이라 자처하는 인간이 동물보다 뒤떨어질 수 있다는 함의가 숨어 있다. 만 10년 넘게 정부 부처를 취재했는데도 관련 기사를 쓸 때마다 숙고를 하고 조심스럽다. 이 속담과 연관이 없지 않은 습관이다.
그래도 서당개보다 3배 이상 기간 동안 정부를 지켜봐 왔고 네 번째 정부를 마주하는 입장이다. 쌓인 경험이 헛일은 아니라는 알량한 믿음으로 제언 한마디 던져볼 법하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다른 부분은 몰라도 ‘인사’ 문제에 대해서는 차기 정부가 숙고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공직사회 인사에 대한 관심이 워낙 지대한 만큼 어떻게 해도 잡음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인사 결과에 따라 대내외 잡음의 크기는 분명히 달라진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검찰총장 시절 누구보다 이를 절절히 겪었던 입장인 만큼 두말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일단 대외적으로 공표한 ‘능력 중심’이라는 인사 원칙에 대해 전적으로 공감한다. 지역 연고나 학연보다 이를 중시한다는 진정성이 국민에게 받아들여진다면 인사 잡음은 최소화할 수 있다. 여기에 두 가지 정도 더 유의했으면 한다. 우선 청와대나 내각 인사를 단행할 때 소위 ‘예스맨’ 중심으로 인사를 하는 일은 가급적 피하기 바란다.
윤 당선인 입장에서는 편할지 모른다. 하지만 역대 정부의 실패가 쓴소리가 아닌 감언이설이 발로였다는 점은 곱씹어볼 만하다. 언젠가부터 대통령이 지시하면 내각은 군소리 없이 움직이는 게 당연해졌다. 항명할 법한 일조차 무난히 넘기는 모양새를 연출한다. 그러다가 사건이 터진다. 박근혜정부 당시 발생한 국정농단 사건은 박 전 대통령에게 “이건 잘못됐다”고 직언하는 구조가 있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수 있다. 문재인정부도 매한가지다.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원하는 청와대 의중에 실무진이 움직였다. 그 결과는 참담하다. 고위 공직자 1명을 포함한 공무원 2명이 구속됐다. 직언할 수 있는 구조가 있었다면 이들이 이렇게까지 무리를 했을까 싶다.
‘영혼 없는 공무원’이기 때문 아니냐는 얘기를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이면에는 인사권이 존재한다. 공무원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청와대 지시를 거스르기 힘들다. 어쩌다 위에 쓴소리라도 하면 항명으로 받아들인다. 이명박정부 때 우회적으로 4대강 사업을 비판했던 환경부 공무원은 좌천됐다. 문재인정부 초기 탈원전 정책을 비판한 고위 공무원 역시 인사상 불이익을 받고 결국 조직을 떠났다. 말 안 들으면 이렇게 된다는 선례를 계속 본 공무원들이 어찌 진실을 얘기할 수 있겠는가. 결국 잘못된 일도 시키는 대로 처리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예스맨 중심의 인사는 조직의 활력을 저하시키는 폐해도 뒤따른다. 농림축산식품부 사례가 대표적이다. 현직 장관의 인사 스타일 중 하나가 예스맨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애연가인 장관이 꽁초를 버릴라치면 두 손을 모아 내밀었던 이는 고속 승진했다. 장관의 의견에 반발이라도 하면 한직에 갈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농식품부 공직자들은 자신의 의견을 장관에게 제시하길 꺼리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혁신을 강조한 정부에서 혁신이 잘 안 나오는 이유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두 번째로 과도한 인사권 남용은 자제했으면 하는 부분이다. 김종인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은 최근 펴낸 저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에서 청와대의 인사 관리 시스템을 문제로 꼽았다. 대통령이 임명 가능한 자리가 지나치게 많은 점을 문제삼았다. 관료들조차 ‘과하다’는 평가를 서슴지 않는다. 한 공무원은 “금융감독기관을 통해 민간기업인 금융권 인사까지 개입할 수 있는 게 정상적인 일인가”라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실력자보다 정권에 줄 대는 이들만 몰려드는 현상이 심화했다. 권력에 취한 정부는 ‘오만하다’는 평가와 함께 사회적 갈등을 초래하는 불씨를 스스로 뿌리고 다녔던 것이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공직자 리스트인 ‘한국판 플럼북’ 도입 얘기가 계속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국 투명성기구의 피터 밴 빈 기업이슈총괄 책임자는 반부패의 핵심이 ‘투명한 정보 공개’라고 했다. 인사도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 분야다.
신준섭 경제부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