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현장에 가보면 ‘영감밖에 없다’고 합니다. 근처 소규모 공장들을 둘러봐도 젊은 사람을 구하기 어려워서 아예 규모를 줄이거나, 가족끼리 일하는 곳이 많아요.” 부산에서 산업용 설비를 만드는 소규모 제조업체 A사는 최근 들어 작업량이 많은 날에는 15만~20만원가량 일당을 주고 일용직 서너 명을 고용한다. 작업량을 맞추고 싶어도 5명도 안 되는 직원으로는 수요 대응이 어려워 그때그때 일용직을 쓴다. A사는 원래 20가지에 이르는 산업용 설비를 생산했다. 하지만 이제는 5가지로 품목을 줄였다. 일손이 부족해서다. A사 관계자는 “젊은 인력이 없다 보니 다양한 시도나 발전은 어렵다. 현상 유지만 겨우 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산업 현장에서 ‘지방 소멸’ ‘지방기업 멸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가 균형발전을 내세우고 여러 제도와 장치를 만들어도 지방기업, 특히 지방 중소기업은 말라 죽고 있다. 상습적인 일손 부족, 젊은 인재의 외면이 가장 큰 원인이다. 지방기업의 좌초는 지역경제 위축과 파산을 필연적으로 부른다.
충남에 있는 제조업체 B사는 주 52시간제 적용을 받으면서 공장 운영난에 봉착했다. 줄어든 근로시간만큼 일손을 뽑아야 하는데, 정작 오려는 사람이 없다. 외국인 근로자로 부족한 인력을 메워왔지만, 코로나19 장기화로 이마저도 불가능해졌다. B사 관계자는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오르면서 인건비는 급등했고, 각종 규제 및 세금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면서 “주위 회사들도 일손 부족을 겪고 있다. 노동집약적 업종인 공장은 아예 문을 닫고 있다. 일부는 자동화 기계를 들여 노동력을 줄이면서 근근이 운영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대기업은 입사하려고 수많은 사람이 줄을 서고 대기하지만, 중소기업은 극심한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기업들이 느끼는 지방 소멸 위기감의 강도는 어느 정도일까.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달 8~17일 수도권 이외 지역에 있는 기업 513곳을 대상으로 ‘최근 지역경제 상황에 대한 기업 인식’을 조사했더니, 응답 기업의 68.4%가 ‘지방 소멸에 대한 위협을 심각하게 혹은 상당히 느낀다’고 답했다. ‘못 느낀다’는 응답은 31.6%에 그쳤다.
지방기업이 꼽는 최대 어려움은 ‘인력 확보’(50.5%)였다. 저출산·고령화로 생산연령인구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데다, 그나마 있는 청년층 인구는 수도권에서 빨아들인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2020년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 순유출된 청년층은 9만3000명에 이른다. 2010년과 비교하면 10년 사이 2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기업의 인력난은 새삼스럽지 않지만, 정도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코로나19가 여기에 기름을 끼얹었다. 지난 2년간 외국인 근로자가 6만명 가까이 감소하면서 인력난을 부채질했다. 2019년 4만208명이던 외국인 근로자 입국자는 2020년 4806명, 지난해 1~8월 3496명으로 급감했다.
또한 지방기업은 지역 불균형의 심화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대한상의 조사에서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불균형이 ‘최근 더욱 확대됐다’고 답한 비율은 57.9%나 됐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경제력 격차가 커진다는 우려도 크다. 대한상의가 전국 6개 권역의 ‘성장잠재력 지수’를 조사했더니, 지난 10년간 수도권의 성장잠재력 지수는 1위로 올라선 데 비해 비수도권은 하락했다. 성장잠재력 지수는 지역 내 핵심기업과 인적자본, 산업구조 등을 토대로 미래 성장역량을 수치화한 것이다. 동남권(부산·울산·경남)의 성장잠재력 지수는 2010년 0.916에서 2020년 0.867로 하락해 전체 6개 권역 중 가장 낮았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균형발전 정책이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정부는 인구감소와 균형발전이란 측면에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해 왔으나, 현재 지방소멸위기에 대응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최근 들어 인구감소지역을 대상으로 정부의 지원제도가 시행되고 있으나, 일회성의 공모방식을 통한 지원이 많아서 지속가능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유도하는 데 제한적이란 지적이 있다”고 분석했다.
우수한 인재를 육성할 수 있는 제도나 지역 발전계획을 종합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송우경 산업연구원 지역정책실장은 “비수도권의 성장잠재력을 높이려면 비수도권에서도 신산업이 육성될 수 있도록 첨단분야에서 일할 수 있는 우수한 인재, 기술, 벤처기업이나 창업을 지원해주는 자본 등의 요소들을 총체적으로 육성해야 한다”면서 “대학과의 산학 연계 등을 통해 지역에도 인재들이 몰릴 수 있도록 정부가 중장기적으로 일관성 있게 비수도권의 성장잠재력을 높일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인식 대한상의 산업정책실장은 “우리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 지역 불균형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하지만 쉽지 않은 과제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기업이 협력해 실질적인 해법을 모색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애 기자 am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