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나의 가장 좋은 친구는 나

입력 2022-03-18 04:02

정신과 의사로서 비만 치료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내 몸에 좋은 음식을 섭취해야 하는 줄 알면서도 그렇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며 우울해하는 분들을 돕기 위해서였다. 진료실에서 상담하다 보면 내 몸을 가장 학대하는 사람이 다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먹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 계속 섭취하며, 내게 유리한 게 아닌 줄 알면서도 선택한다. 우리는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해버리는 내면의 갈등에 끊임없이 직면한다.

성경에 보면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미워하는 것을 행한다는 사도 바울의 고백(롬 7:15)이 있다. 왜 우리는 원하지 않는 걸 자꾸 하게 될까. 과연 내가 유리한 선택을 하지 못하게 막는 건 무엇일까. 심리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내 몸을 사랑하지 않는 이유는 낮은 자존감과 직결된다. 낮은 자존감의 기원을 더 파고들면 ‘상처’와 ‘버림받음’이 있다. 나는 좋은 것을 누릴 자격이 없다는 근본적 생각이 무의식이라는 마음의 골짜기에 음산하게 깔려 있다.

심한 폭식으로 체중이 10㎏이나 늘어버린 여성을 상담했다. 그녀는 인정받기 위해 쉬지 않고 일했고, 퇴근 후 지친 뇌는 쾌락 물질을 찾게 됐다. 즉각적 보상을 일으키는 탄수화물은 혈당이 치솟으면서 잠시 행복감을 줬지만 맛도 모르고 먹는 음식이 만족감을 줄 리 없었다. 다른 여자들은 다 자기보다 날씬하게 보였다. 뚱뚱한 몸 때문에 사람 만나는 일도 꺼려졌다. 그렇게 다이어트가 평생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아무리 결심하고 안 먹으려 해도 매번 똑같은 행동을 하는 자신에게 자괴감이 들었고 자기 몸에 대한 수치심이 생겼다. 그녀가 나를 찾았을 때는 직장의 능률도 떨어지고 대인 기피까지 생겼다. 심리 상담을 받으며 식습관을 개선했고 운동으로 체중도 감량하면서 상태가 좋아졌다.

이를 통해 심리와 육체 그리고 영혼의 상호 연관성을 확실하게 발견했다. 체중 조절에 성공한 사람은 외모만 달라질 뿐 아니라 표정도 환해지고 자신감이 넘친다. 그러나 요요현상을 겪는 이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들에게 식욕의 의미는 ‘위로’와 ‘관계’가 필요하다는 신호였다. 이는 ‘가짜 식욕’이다. 군것질, 과자, 빵 등 특정 음식을 자제하지 못하게 되는데 뇌의 ‘측핵’이라는 부위가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그 어떤 음식으로도 채울 수 없는 공허함은 다른 물질로 대체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알코올중독이나 쇼핑중독, 성중독, 일중독, 운동중독 등등.

그런 우리를 위해 예수님은 자신을 음식에 비유했다. “나는 생명의 떡(the bread of life)” “내 살은 참된 양식(my flesh is real food)”이라고 말이다(요한복음 6장). 이 비유는 마치 진공청소기처럼 주변에 보이는 것들을 무작위로 흡입해 채워보려 하지만 채워지지 않는 인간의 만성적 공허함을 의미한다. 사람은 친밀함을 갈망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만성적 공허함과 내적 자존감이 채워질 때 나에게 유리한 선택을 하게 된다.

머리로는 해롭다는 걸 알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자기 파괴적 선택을 왜 반복하고 있는가? 예를 들면 자녀에게 이 말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심한 말을 한다든지, 이성 교제를 할 때 자꾸만 나쁜 남자(여자)에게 끌리는 반복적 패턴을 보인다든지, 이 사람이 아닌 줄 알면서도 관계를 끊어내지 못하고 가스라이팅을 당한다든지, 나에게 해로운 폭음·폭식을 멈출 수 없다든지 하면 내 안의 심리적 허기를 다뤄야 할 때다. 과거의 상처, 공허함, 결핍감 그리고 낮은 자존감이 무의식적으로 나를 함부로 대하게 만든다. 나에게 가장 좋은 친구가 돼 줄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유은정 서초좋은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