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협상이 급진전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직접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철회를 시사했고, 양측 협상에서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 논의가 진행 중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16일(현지시간) 자국 매체 RBC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와의 평화협상이 쉽지 않지만 타협의 희망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이번 위기는 향후 세계 질서를 규정할 것”이라며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가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다”고 말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러시아 대통령실) 대변인은 우크라이나가 스웨덴 오스트리아 같은 중립국이 된다면 이를 ‘타협’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 협상단 대표 블라디미르 메딘스키 대통령 보좌관은 이런 방안을 러시아에 제안했다고 러시아 관영매체 타스는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날 영국 런던에서 열린 ‘합동원정군’(JEF) 지도자 회의에 화상으로 참석해 “우크라이나는 나토 회원국이 아니다. 우리는 이를 깨달아야 한다”며 “수년간 나토의 문이 열려있다고 들었지만, 이미 우리는 나토에 가입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러시아의 핵심 침공 명분 중 하나로 계속해서 철회를 요구해왔다.
지난 5일 우크라이나 집권당 ‘국민의 종’ 다비드 하라하미야 대표도 “우크라이나는 ‘비 나토’ 모델을 논의할 준비가 됐다”고 말한 바 있다. 따라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추후 협상에선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지 않고 중립국화하는 대신 미국·중국·영국·독일·프랑스 등이 우크라이나의 안보를 보증해주는 안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의 수석 보좌관 미하일로 포돌랴크는 우크라이나가 중립국 모델 채택안을 거부한다고 말했다고 CNN은 전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지역 중 러시아인이 많은 동부 돈바스 지역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라브로프 장관은 돈바스 지역 등에서 러시아어 사용과 언론 자유도 협상에서 중요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유럽 일각에선 우크라이나가 영토를 일부 내주더라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체면을 살려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BBC는 핀란드가 옛 소련의 침공을 받은 1939∼1940년 ‘겨울 전쟁’에서 영토 일부를 내줬지만 가장 중요한 독립과 주권을 지켜낸 사례를 소개했다. 러시아군이 수도 키이우(키예프)를 비롯해 훨씬 더 많은 영토를 점령하는 것을 막아내면 1940년에 핀란드가 그랬듯 독립 국가로서 생존하고, 중립국화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편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화상을 통한 미국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우크라이나 영공에 대한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거듭 촉구했다. 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공중 우위를 점하고 있다며 정교한 방공시스템과 전투기 지원도 요청했다.
하지만 미국 등 서방은 전쟁 확대, 미·러 전면전 촉발 우려를 이유로 비행금지구역 설정에 여전히 부정적이다. 이 조치는 러시아 항공기 격추를 의미하기 때문에 최악의 경우 제3차 세계대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유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비행금지구역 설정은) 핵무기 보유국인 러시아와의 긴장을 촉발하고, 전쟁을 확대할 수 있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재확인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신창호 선임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