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의 16일 청와대 오찬 회동이 무산된 결정적 이유는 차기 한국은행 총재 지명 등을 비롯한 인사 문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윤 당선인 측은 문 대통령의 임기 말인 점을 고려해 공공기관 인사는 인수위와 협의할 것을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청와대는 법률에 따라 문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갈등의 골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회동이 불발됐다는 것이다.
청와대와 윤 당선인 측은 한은 총재뿐 아니라 6월 지방선거를 관리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과 감사원 감사위원 선임을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인사 문제를 놓고 양측이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서 16일로 예정됐던 두 사람의 오찬 회동은 불과 4시간을 남겨두고 불발됐다. 현재 권력인 대통령과 미래 권력인 당선인의 회동 무산은 사상 초유의 사태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윤 당선인 측은 문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한은 총재 인사 문제를 의제로 올릴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기준금리 결정권을 갖고 있는 한은 총재는 코로나19 극복과 부동산 문제 등을 포함한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판단 때문이다.
청와대 일각에선 윤 당선인 측이 특정 인물을 한은 총재 후보로 제안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그러나 청와대는 윤 당선인 측이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인사권에 대해 선을 넘는 요구를 했다고 보고 주장을 수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회동은 결국 연기됐다.
인사 문제를 놓고 양측의 충돌 소지가 더 있다는 점도 문제다. 문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오는 5월 9일까지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등을 새로 임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측은 구체적인 회동 무산 이유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함구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확전을 자제하겠다는 의도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전 8시 “실무 협의가 마무리되지 않아 회동 일정을 다시 잡기로 했다”며 “실무 차원에서의 협의는 계속 진행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도 같은 시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브리핑을 갖고 “일정을 미루기로 한 이유에 대해서는 양측 합의에 따라 밝히지 못함을 양해해 달라”고 말했다.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은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원회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무산이 아니라 실무 협의에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전 대통령 사면 문제와 관련해선 “그런 걸로 충돌한 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청와대는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는 ‘이명박·김경수’ 사면 바터(교환)설을 일축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우리가 김경수 전 경남지사 사면을 부탁하거나 한 적 없다”고 강조했다. 윤 당선인 측 인사는 “실제로 두 분의 회동이 성사되면 갈등설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세환 이상헌 이가현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