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사양길서 ‘기저전력’으로 부활… 신한울 3·4호기가 시작

입력 2022-03-17 04:04

문재인정부 5년간 사양길을 걸었던 원전 산업이 부활을 예고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문재인정부의 탈원전 정책 폐기를 공언했다. 원전을 ‘기저전력’으로 명명하고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10년간 원전 10기 수출과 같은 세부 공약을 더했다. 이에 따라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최소 60% 이상으로 늘리겠다는 현 정부의 ‘에너지 믹스(Mix)’도 재검토가 불가피해졌다. 하지만 사용후핵연료 처리 시설도 없는데 무작정 원전을 늘리겠다는 구상에 대한 우려도 있다. 원전에 반대하는 환경단체 등 시민사회와 정부의 갈등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5년 만에 폐기되는 ‘탈원전’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 당선 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성격으로 꾸려진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탈원전’을 에너지 정책 최우선 사항으로 내세웠다. 당시 이개호 국정기획위 경제2분과 위원장은 “근본적으로 원자력 정책을 재검토하겠다는 게 문재인 대통령의 메시지”라고 전했다. 문재인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 속 탈원전 정책은 그렇게 탄생했고 원전 산업은 쇠락했다. 고리1호기와 월성1호기는 조기 폐쇄됐고 신규 원전 건설은 중단됐다. 동력을 잃은 원전 산업은 해외 수주 전선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문재인정부 5년간 해외 원전 건설 사업 수주 건수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잡음도 끊이지 않았다. 월성1호기 조기 폐쇄는 경제성 조작 논란을 낳으며 검찰 수사로까지 이어졌다. 산업통상자원부 공직자 2명이 구속되는 초유의 상황까지 발생했다. 산업부 소속 공무원들의 기피 대상 1호로 ‘원전 업무’가 꼽힌 것도 무리는 아니다.

“원전은 ‘기저전력’”

이랬던 원전산업은 5년 만에 변곡점을 맞았다. 윤 당선인은 지난 15일 경북 울진군 산불 피해 현장을 찾은 자리에서 “지역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가급적 빨리 신한울 원전 3·4호기 공사를 재개해 많이 일할 수 있게 해보겠다”고 밝혔다. 공약집에 있는 각종 원전 진흥책 중 하나다. 윤 당선인은 공약집에서 원전을 전력수급의 근간 격인 ‘기저전력’으로 명명하며 지위를 승격했다.

이에따라 원전산업 진흥책이 전방위로 추진될 전망이다. 공약집에 따르면 운영 허가가 만료되는 노후 원전의 계속 운전될 전망이다. 원전을 신재생에너지와 비슷한 수준으로 ‘동반 성장’시키겠다고도 언급했다. 과학기술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국민의견을 수렴해 적정 에너지 믹스를 수립해 추진하겠다며 원전 확대를 암시했다.

원전 수출에도 전력을 쏟는다. 범정부 원전수출지원단을 구성해 원전 수출을 전폭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구체적인 목표치로는 향후 10년간 10기의 원전을 수출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를 통해 질 좋은 일자리라 할 수 있는 고급 일자리 10만개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이와 함께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신규 원전 기술 개발에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탄소중립 시나리오 조정 숙제


공약대로라면 문재인정부 시절 에너지 정책은 대수술이 불가피하다. 탄소중립을 위해 세웠던 에너지 믹스를 전면 수정해야 한다.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위원회가 제안한 각종 시나리오가 흐트러질 수밖에 없다.

탄소중립위는 2030년까지 원전 발전량 비중을 23.9%로 유지하는 대신 2050년에는 6.1%(시나리오 A) 또는 7.2%(시나리오 B)까지 비중을 낮추는 구상을 설계했다. 대신 신재생에너지를 대폭 확대해 기저 전력화한다는 계획이었다. 최소 60.9%에서 최대 70.8%까지 늘리는 방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원전과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엇비슷하게 가져간다는 윤 당선인의 계획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수정이 불가피하다. 그나마 원전의 경우 석탄화력발전 등과 달리 탄소가 배출되지 않는다는 점이 다행인 부분이다. 비중을 조절하더라도 탄소 발생량이 늘어나면서 국제사회에 공언한 탄소 배출량 감축 목표가 훼손될 우려는 적은 편이다.

하지만 원전을 늘릴 경우 원전 가동 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 처리에 대한 우려가 더 높아지는 점이 문제다. 당장 영구 폐기 시설이 없는 상황에서 무작정 원전 확대만 얘기할 경우 시민사회의 반발을 살 수 있다. 원전업계조차 이 난제에 대한 해결 방법을 명확히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한국원자력환경공단 관계자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 시설 설치 필요성은 차고 넘치지만 진행은 더디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정반대 정책보다는 논의를 통해 모두가 인정할 만한 수준의 합의를 이끌어내야만 갈등을 유발하지 않을 수 있다고 제언한다. 문재인정부가 실질적으로 원전 비중이 줄어 들지도 않았는데 탈원전이란 말을 꺼낸 탓에 갈등을 유발한 사례를 반면교사 삼으라는 것이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16일 “지난 5년간 원전 발전 비중이 줄지 않았고 신한울 1·2호기와 신고리 5·6호기 모두 건설 중인데 탈원전이란 표현을 쓴 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기술 발달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미국 메사추세츠 공대(MIT)가 발간하는 ‘MIT 테크놀로지 리뷰’는 올해의 10대 기술 중 하나로 핵융합을 꼽았다. 소위 ‘인공태양’으로 불리는 이 에너지원이 2030년이면 상용화 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원전을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이기도 하다. 홍 교수는 “무리하게 원전을 더 짓겠다고 하기보다는 여러 면에서 현명한 조율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