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현지시간) 저녁 루마니아 북동부 수체아바주 시레트 국경 출입국관리소에 회색 승합차 한 대가 들어섰다. 차량에는 ‘힘내세요, 한국교회가 함께합니다’란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이 자동차에는 지난 10일 한국교회봉사단(한교봉)과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가 긴급 구호 자금으로 구입한 구호물품이 들어 있었다.
우크라이나 한국인선교사협의회장 한재성 선교사, 오픈발칸 소속으로 불가리아에서 사역 중인 양기동 김아엘 김현미 선교사와 우크라이나 현지 사역자로 물품 전달에 도움을 주는 카터이나 마리니나씨가 한교봉과 KWMA를 대신해 구호물품을 전달하기 위해 차량에 탑승해 있었다.
한교봉과 KWMA는 ‘우크라이나 긴급 구호 실사단’을 꾸려 지난 8일부터 루마니아 현장을 찾았다. 피란민 구호와 함께 우크라이나에 남아 있는 현지인을 돕는 게 중요하다는 한 선교사의 이야기를 듣고 긴급 구호를 두 방향으로 설정했다.
이들은 시레트 국경 현장을 방문하기 전 수체아바시 대형마트에서 이불과 매트, 세제, 에너지바 등을 구매했으며 지난 6일 태어난 우크라이나 파샤 목사의 아기를 위해 유아용 물티슈와 유모차도 구입했다.
하루라도 빨리 구호품을 보내고 싶었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피란민이 몰려들면서 시레트 인근 지역에선 우크라이나에 갈 차량이나 운전자도 없었다. 결국 오픈발칸 소속 선교사의 차량을 이용하기 위해 일정을 미뤘고, 오픈발칸 선교사들의 사역지인 불가리아에서 가져온 의약품 등을 추가했다.
이날 선교사들은 양국 간 국경이 맞닿은 공간에서 우크라이나 현지인을 만나 그들의 차량에 가져온 물건을 옮겨 담았다. 한국 선교사들은 외교부가 우크라이나 전 지역에 대해 여행경보 4단계를 발령하면서 국경을 넘을 수 없었다. 대신 카터이나씨가 물품을 옮겨 실은 차량에 올라 루마니아 국경과 가까운 우크라이나 체르니우치와 중서부 도시인 빈닌차에서 물품을 전달했다. 물건을 받은 주민들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밝았다. 아기용품을 받은 파샤 목사의 부인도 환한 미소를 지었다.
국경에서 물건을 옮겨 받은 발렌친 말로휘이씨는 “지금 있는 지역(체르니우치)은 전쟁 포격이 없는 국경 지역이라 어려운 곳을 도울 수 있다”며 “그곳에 구호품을 전달하고 있는데 한국교회가 전달한 구호품은 너무나 필요한 물품이다. 도움에 감사를 전한다. 안전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말했다. 말로휘이씨는 체르니우치오순절교회 성도다.
선교단체인 바나바미션 소속 관계자는 시레트 국경을 넘어 우크라이나 수도인 키이우(키예프)로 구호물품을 운반하며 찍은 현장 사진을 루마니아 채정기 선교사에게 전달했다. 사진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상황을 가감없이 보여줬다.
도로엔 타이어와 흙을 담은 포대로 참호를 만들어 방어선을 구축한 민병대 모습이 보였다. 피란 행렬도 이어졌다. 도로 곳곳엔 방어선을 뚫고 줄 지어 오는 피란 차량도 보였다.
수체아바(루마니아)=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