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생산라인을 자국에 유치하려는 ‘반도체 영토 경쟁’이 유럽으로 번지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반도체 내재화를 위해 ‘유럽 반도체법(European Chips Act)’을 추진한다. 파운드리 사업을 강화해 ‘반도체 왕좌’에 복귀하려는 인텔은 유럽에 대규모 투자를 선언했다.
인텔은 향후 10년 동안 유럽에 최대 800억 유로(약 108조600억원)를 투입할 계획이며, 우선 독일 등 6개 나라에 330억 유로를 투자한다고 15일(현지시간) 밝혔다. 인텔은 첫 단계로 독일 작센안할트주 마그데부르크에 170억 유로를 들여 반도체 공장 2개를 짓는다. 2023년 상반기에 착공하고 2027년 가동을 목표로 한다. 현재 유럽 집행위원회(EC)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인텔은 이 공장에 최첨단 공정을 적용해 유럽 및 전 세계 파운드리 고객의 수요를 맞춘다는 계획이다. 이밖에 인텔은 아일랜드 이탈리아 프랑스 폴란드 스페인 등에서 생산 및 연구·개발(R&D) 시설 확충을 꾀하고 있다.
인텔의 전격적인 ‘유럽 투자’는 인텔과 EU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유럽의 경우 첨단 IT 기업보다 자동차 업체가 많다. 최근 차량용 반도체 수급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커넥티드카, 전기차 등이 본격화하면서 차량용 반도체 수요는 늘어나고 있다. 이에 유럽 집행위는 지난달 8일 안정적인 반도체 공급을 목적으로 하는 ‘유럽 반도체법’을 제안했다. 2030년까지 유럽 내 반도체 생산을 전체의 20%까지 끌어올릴 생각이다. 공공과 민간에서 430억 유로의 투자를 유도할 예정이다.
마침, 인텔은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서 입지를 넓히려는 중이다. 최근 파운드리 사업부 내에 자동차 전담 그룹을 신설하는 등 시장 공략에 나섰다. 파운드리 사업에서 TSMC와 삼성전자를 추격하려면 고객 확보가 필수적인 데 유럽에 공장을 지어 자동차 업체들과 끈끈한 관계를 맺겠다는 포석이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인텔의 투자 계획은 인텔과 유럽 모두에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유럽 반도체법은 민간과 정부가 협력해 유럽이 반도체 영역에서 입지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U는 TSMC에도 유럽에 공장을 지으라고 구애 중이다. EU는 TSMC 등이 있는 대만을 ‘생각이 비슷한 파트너’로 여긴다. 대만 외교부도 EU가 대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걸 기쁘게 생각한다고 화답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TSMC는 현재 미국 일본 싱가포르 등에서 신규 공장을 추진하고 있다. 당장 유럽에 공장을 추가할지는 불투명하다.
삼성전자의 경우 유럽에 반도체 판매법인이 있지만 생산시설은 없다. 삼성전자는 D램과 파운드리 모두에서 초미세공정은 국내에서만 생산한다. 이 때문에 현재로선 유럽으로 생산기지를 확대할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