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택배·남편은 대리기사… 플랫폼노동 가족의 좌절과 시작

입력 2022-03-17 19:23

소설의 주인공 수경은 곧 40대가 되는데 자기 차를 이용해 택배를 한다. 남편은 4년에 걸친 전업투자자 생활을 정리하고 대리운전을 시작했다. 60대인 수경의 어머니는 딸과 함께 배송을 하거나 심부름 앱에서 일거리를 잡는다. 수경의 아버지는 도보로 음식 배달을 한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플랫폼 노동을 한다. 네 명의 성인이 거주하는 집에서 단 한 명도 돈을 벌어오는 사람이 없는 상황이 지속되던 어느 날, 수경은 남편의 고기 타령을 듣다가 깨닫는다. “이젠 때가 되었다. 그들 모두 정신을 차릴 때가.” 그리고 이렇게 외친다. “다들 일하러 나가자.”

경력단절녀, 전업투자자, 노인인 그들에게 일자리가 쉽게 찾아질 리 만무하다. 결국 그들이 찾아낸 건 플랫폼 노동이었다. 택배, 대리운전, 심부름, 음식 배달 등 언제나 일할 사람을 구하는 일자리들.

소설은 플랫폼 노동의 현실을 충실하게 묘사한다. 수경의 어머니는 “비둘기도 물 먹을 시간이 있는데 우리는 어째 그럴 시간도 없냐”고 한탄하고, 수경의 남편은 “이 일을 시작해보니 사람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는 모든 스트레스 가운데 가장 큰 걸 뛰어넘어 삶의 의욕을 빼앗아 가기도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이 소설은 플랫폼 노동에 대한 비판으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들, 상처받고 좌절한 사람들, 밀려난 사람들이 일을 통해 새로 일어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들이 주로 선택하는 일이 플랫폼 노동이다. 물론 임시적이고 수입이 적고 스트레스가 심하다. 하지만 플랫폼 노동엔 다른 이야기도 있다. 자신을 방에 가둔 상처를 넘어 다시 세상으로 나오는 용기, 어떻게든 생계와 가족을 책임지려는 마음, 삶을 바꾸고 싶다는 열망 같은 것들.

“스스로 일어서는 것. 상처를 지닌 채로 걸어가는 것. 다시 사회에 뛰어들어 생계와 보람을 위해 살아가는, 사회와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것. 그렇게 해보고 싶었다.”

작가는 가족 구성원 모두가 플랫폼 노동자라는 흥미로운 설정을 통해 뭔가 새로 시작하는 것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그들 모두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해보기로 결심했다는 것이 기적. 그들 모두 웃고 있다는 것이 기적”이라면서.

소설에는 작가 이서수(39)의 생활이 반영돼 있다. 이서수는 자신도 비정규직 일자리를 전전하고 있다면서 “플랫폼 노동은 부수적인 수입이 필요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일이 되었다”고 말했다. 2014년 등단한 이서수는 ‘미조의 시대’로 2021년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은 ‘당신의 4분 33초’(2020년) 이후 두 번째.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