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3% 포인트. 1987년 민주화 이후 치러진 여덟 차례 대통령 선거 가운데 최소 표차다. 투표 결과로만 놓고 보면 민심이 정확히 반으로 쪼개진 양상이다. 거칠게 표현하면 나라가 반 토막으로 나뉜 셈이다. 걱정되는 것은 선거 과정에서 표출된 앙금의 골이 너무나 깊게 파져 있다는 점이다. 이번 대선은 정책 의제는 실종한 채 비리를 둘러싼 막말과 의혹 공세로 얼룩진 네거티브 선거였다. 정책 대결은 사라지고 실체도 불분명한 진영 대결로 점철됐다. 합리적 판단은 설 자리가 없고 혐오 감정만 확산됐다. 한마디로 마음의 상처를 많이 만들어낸 선거다. 선거라는 것이 본디 거친 과정이기는 하지만 이번 대선은 유난히도 거칠었다. 이러하기에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기 불편한 사람이 많다는 것도 미뤄 짐작이 가능하다.
갈라질 대로 갈라진 나라에 던져진 숙제는 국민통합이다. 대통령 당선인의 일성이 국민통합인 것은 지금 우리 사회의 분열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방증하고 있다. 통합의 화두를 끌어안지 않고서는 국가를 온전하게 운영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역대 정부는 예외 없이 통합을 국정의 핵심 철학으로 삼았다. 대통령 직속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기도 했는데, 대통령 연설문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문구의 하나가 사회통합이었다. 그러나 모두 힘을 합쳐 하나가 돼야 한다는 당위적 주장만 있었지 정작 통합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기억에 남는 것이 별반 없다. 통합은 규범적 구호만으로 구현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접근과 성찰이 필요하다.
통합을 이루는 틀이 협치다. 협치란 균형을 찾아나서는 과정이다. 사람으로 균형을 찾기도 하고 정책으로 균형을 찾기도 한다. 협치의 기본은 다른 것에 대한 존중이다. 한국 정치가 낙후돼 있고 척박하다는 것은 다른 것에 대한 포용과 존중은 찾아보기 어렵고 다른 것에 대한 오만, 독선, 불통만이 난무하는 데서 비롯한다.
다름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해보면 이런 것이다. 진보 성향의 정권은 보수 논조의 주장을 더 많이 접해야 하며, 보수 성향의 정권은 진보 논조의 주장에 더 많이 귀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들도 진보 정권이 집권할 때는 보수 담론을 더 보아야 하고, 보수 정권이 집권할 때는 진보 담론을 더 접해야 한다. 그래야 건강한 균형의 추를 유지할 수 있다.
김대중정부 시절 한국은행 수장이었던 박승 총재는 한 신문 인터뷰에서 진보 정권은 약간 우클릭할 필요가 있고, 보수 정권은 약간 좌클릭할 필요가 있다고 얘기한 바 있다. 그래야만 시장 기능이 제대로 작동해 사회와 경제가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게 정책의 협치다. 협치란 동의할 수 있는 최소 조건을 찾아나서는 일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의 최근 정치는 우는 더 우로 갔고, 좌는 더 좌로 갔다. 시장은 더 시장일변도의 정책으로, 규제는 더 규제일변도의 정책으로 행보했다.
역사에서 교훈을 찾아본다. 매월당 김시습은 좋은 정치를 하고 싶으면 이전 3대에 걸친 정치의 우(愚)를 살펴보라고 했다. 거기에 해법이 있다고 설파한 것으로 전언된다. 현실정치를 거부한 은둔의 논객이 던진 메시지가 귓가에 맴도는 것은 역사란 오늘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명박정부, 박근혜정부, 문재인정부가 보여준 공통의 문제는 협치와 거리가 멀었다는 점이다. 보수는 더 보수로 치달렸고, 진보는 더 진보로 치달았다. 인재의 등용이나 정책 모두 예외가 아니었다. 이명박정부는 500만 표를 훨씬 넘는 압도적 표차를 마치 전리품으로 간주했고, 박근혜정부는 집권 2년차에 맞은 세월호 참사로 이미 주춧돌이 흔들렸으며, 문재인정부는 모든 것이 촛불혁명에 갇혀 버렸다. 앞선 세 정부는 다른 이념 지향을 가지고 있었지만 공통적으로 협치와는 거리가 멀었다. 결과는 굳이 중언부언할 필요가 없다.
협치는 역량 있는 인재를 널리 구하는 인사에서부터 시작하지만 협치의 완성은 정책에서 균형점을 찾을 때 마무리된다. 인사를 통한 협치는 분명 대증요법과 같은 효과가 있다. 그러나 협치가 실질적 실체를 가지려면 제도적 정책적 노력이 있어야 한다. 5년 만에 집권한 보수 정권은 약간 좌클릭하는 정책적 담대함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정확히 반으로 나뉜 민심이 통합으로 화답할 것이다.
박길성 (고려대 교수·사회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