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재난 지원, 이젠 현실화하자

입력 2022-03-17 04:02 수정 2022-03-17 04:02

우리 민족의 소나무 사랑은 남다르다. 솔잎 송진 송화는 약재로 쓰이고, 솔방울은 불쏘시개나 연료로 활용된다. 질 좋은 목재는 건축재로 이용된다. 정신적으론 충정과 지조의 상징으로 꼽힌다.

반면 치명적 약점도 있다. 송진은 유분이 많아 불이 잘 붙고 좀처럼 꺼지지 않는다. 불붙은 솔방울은 강풍을 타고 먼 거리까지 날아간다. 연기도 많이 낸다. 소나무 대신 방화수림 역할을 하는 참나무 등 활엽수를 심는 방법이 있지만 쉽지 않다. 산림당국이 여러 고민을 했으나 동해안 지역 토질이 척박해 활엽수가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고 한다.

예부터 산불은 재난으로 여겨졌다. 불쏘시개인 잡목, 간벌목이 사방에 널려 있으니 한번 불이 붙으면 순식간에 퍼지고 피해 면적도 상상을 초월하는 탓이다. 과거에도 산불 방지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조선 태조는 건국과 동시에 산림을 관리하는 사재감을 만들었고, 세종은 한양의 화재 예방을 위해 금화도감을 만들었다. 불을 끄는 금화군도 설치했다. 사재감과 금화도감은 현재 산림청, 금화군은 산불재난특수진화대쯤 되겠다. 경북 문경새재 길섶엔 ‘산불됴심’ 네 글자가 새겨진 1.5m 높이 비석이 있다. 조선 영조 또는 정조 시절 조령의 별장(別將)이 만들었다. 현존하는 유일한 조선시대 순 한글 비석으로, 민초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한글로 썼다.

조선시대 산불 관리를 엮은 국립산림과학원 자료들을 찾아봤다. 성종 시절 강원도 양양·간성에서, 인조 때는 양양에서 큰 산불이 났다. 중종 때는 강릉, 헌종 시절엔 간성에서 또 큰 산불이 났다. 가장 피해가 컸던 산불은 현종 시절인 1672년 강릉·삼척 대형 산불이다. 65명이 사망하고 민가 1900여채가 불탔다. 대형 동해안 산불이 최소 수백년 이어진 것인데, 조선시대엔 큰불이 나면 다른 지역에서 걷은 세금으로 피해 주민들을 지원했다. 구휼제도가 제대로 돌아간 셈이다.

최근 산불이 연중 상시화되고 대형화되며, 진화 역시 어려워졌다. 그런 산불이 최근에는 기후변화 영향까지 받고 있다. 기온이 올라가면 산불 확률이 높아지고, 산불은 다시 이산화탄소 배출을 늘려 기후변화를 촉진한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산불이 더 빈번히 발생하고 강도도 세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3월 동해안 산불이 되풀이됐다. 모든 산불을 막기는 불가능하지만 피해 최소화를 위한 대책이 절실하다. 산림당국은 방화수림 식재, 소방임도 조성, 간벌목 반출, 소나무 밀도 낮추기, 산림 내 우수저류시설 설치 등 많은 제언을 시행할 필요가 있다.

이번 동해안 산불 피해 지역이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됐다. 그런데 집이 전소된 주민에게 지원하는 금액은 1600만원에 불과하다. 세입자에겐 600만원 입주보증금 또는 임대료만 지급된다. 주민들은 지원 기준이 턱없이 모자란다고 호소한다. 요즘은 여러 형태의 재난이 동시에 발생하는 복합재난의 특성이 뚜렷하다. 그 규모 역시 대형화·다양화됐다. 정부는 고착화된 지원 기준을 고집하지 말고 현실에 맞는 지원을 해줘야 한다.

213시간 동안 밤낮없이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인 산림청 산불재난특수진화대의 처우 역시 개선이 시급하다. 최저임금은 매년 오르는데 특수진화대원 435명의 임금은 월 250만원으로, 2017년 이후 6년째 동결 중이다. 초과근무수당도 위험수당도 없다. 선진국이라면 이젠 피해 주민, 진화대원들에게 적합한 보상을 해주자. 언제까지 부족한 정부 예산만 탓할 것인가.

남혁상 사회2부장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