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장모(32)씨는 최근 뱅크시의 작품 ‘러브 랫(Love Rat)’을 1만 조각으로 나눠 ‘조각투자’를 진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구매를 고민했다고 한다. 장씨는 “고민을 하다가 좋은 조각을 얻지 못할 것 같아 포기했다”면서도 “나중에라도 뱅크시처럼 투자 가치가 있는 유명작가 작품에 투자 기회가 생긴다면 참여할 것 같다”고 말했다. 장씨는 대체불가능토큰(NFT·Non-Fungible Token) 작품을 10종류 이상 구매해 보유하고 있다. 그는 “미래 가치가 있어 보여 NFT 작품을 사들이고 있다. 앞으로도 NFT 투자를 종종 할 의향이 있다”고 했다.
미술작품에 투자하는 ‘온라인 아트테크(Art-tech)’가 뜨겁다. 전통적으로 각광받던 미술품과 수집품 시장에 최근 온라인 플랫폼과 조각투자 등 다양한 접근 방식이 등장하고 있다. 여기에 MZ세대의 투자 열풍이 불을 댕겼다. 다만 과도한 투자를 경계해야 하고 새로운 시장 개척에 앞서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따른다.
18일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업계 등에 따르면 글로벌 미술시장은 2009년 이후 성장흐름을 타고 있다. 2019년에 약 644억 달러(약74조원) 규모로 성장했다. 2020년 기준 차량용 반도체(380억 달러) 시장보다 더 큰(520억 달러) 규모다. 한국 미술시장도 다르지 않다. 지난해 거래액 9000억원을 돌파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2021년 한국 미술시장 결산’을 보면 경매시장(3280억원) 화랑(4400억원) 아트페어(1543억원) 등을 더하면 9223억원 규모에 이를 정도다.
미술시장이 몸집을 키운 이면에는 ‘온라인 아트테크’가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경매사들은 온라인 경매를 늘리고 있다. 접근성이 한층 좋아진 셈이다. 여기에다 ‘아트시’ ‘아트프라이스’ ‘아트넷’ 등의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누구나 쉽게 글로벌 미술계 소식, 주요 갤러리의 관심 작품을 수시로 접할 수 있게 됐다. 접근성은 거래 증가와 시장 성장을 부른다. 투자 아트바젤과 금융그룹 UBS의 ‘2021 세계 미술시장 보고서’는 미술시장의 온라인 거래 비중이 25%로 전년 대비 2배 수준으로 커졌다고 분석했다.
또한 MZ세대가 미술시장 투자에 나서면서 소비계층이 달라졌다. ‘아트마켓보고서 2021’에 따르면 미국 영국 중국 등 10개국의 고액 자산가와 수집가 2596명 가운데 56%는 MZ세대다.
최근에는 온라인 아트테크 방식의 하나로 미술품의 지분을 쪼개 구매하는 조각투자가 주목을 받는다. 적은 돈으로도 투자 가능한 일종의 ‘공구(공동구매)’다. 아트테크 플랫폼 ‘테사’ ‘소투’ 등에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의 작품을 지분 형태로 나눠서 1000원부터 투자할 수 있게 한다. 테사에서는 앤디 워홀, 마르크 샤갈, 구사마 야요이 등의 미술품이 판매되고 있다. 테사에서 지난해 12월 뱅크시 작품 ‘러브 랫’을 1만 조각으로 나눠 판매한 조각투자는 시작한 지 1분 만에 완판되기도 했다.
NFT를 활용한 디지털 아트도 미술시장을 풍성하게 한다. NFT는 교환·복제가 불가능해 고유성과 희소성을 지니는 블록체인 기반의 토큰이다. 영상·그림·음악 등을 복제할 수 없는 콘텐츠로 만들 수 있다. 세계적인 경매업체 크리스티 경매에서 NFT 작품 ‘매일: 첫 5000일’이 6930만 달러(약 775억원)에 팔리기도 했다. 나이키, 아디다스, 구찌, 버버리 등의 해외 명품은 NFT를 활용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배운철 한국NFT콘텐츠협회 위원장은 “원래 디지털 작품의 경우 복제가 쉽게 가능하고 원본 증명이 어렵다는 점 때문에 투자수단으로 발전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지녔었다. NFT 기술을 통해 디지털 자산에 대한 원본증명과 거래 시 확인되는 소유증명이 가능해지면서 투자 가능성이 열리게 됐다”면서 “지난해 NFT 시장 규모는 2020년 대비 200% 이상 성장했고, 올해도 100% 이상 성장을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트테크가 뜨거운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다. 미술품 투자가 장기 수익률 측면에서 우수하기 때문이다. 미술투자자문사 마스터웍스(Masterworks)가 현대미술과 금융투자자산의 25년간(1995~2020년) 수익률을 비교한 결과, 현대미술(1945년 이후 제작 작품) 수익률은 14.0%로 S&P500(9.5%)이나 금(6.5%)보다 높았다. 돈이 되기 때문에 돈이 몰리는 셈이다.
단 아트테크 열풍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수익률만큼의 리스크가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2006~2008년 미술시장 붐을 타고 생겨났던 전 세계 50여개 아트펀드 가운데 상당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폭락을 경험했다. 새롭게 떠오른 NFT나 조각투자는 법의 사각지대에 있기도 하다. 관련 법령이 명확하게 정비돼 있지 않아 피해를 입어도 구제를 받기 어렵다. 배 위원장은 “실제 작품을 디지털 작품으로 만들 때 저작권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산업계에 자율적인 가이드라인과 법 채계 등이 보완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애 기자 am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