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비가 역대 최대치를 또다시 경신했다. 정부는 코로나19 탓으로 돌리지만 옹색해 보인다. 사교육비 증가는 코로나19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박근혜정부 말기부터 고개를 들어 문재인정부 들어 가파르게 상승했다(그래픽 참조). 사교육비 총액은 2017년 18조7000억원에서 지난해 23조4000억원으로 증가했다. 학생은 줄고 있는데 사교육비 총액은 껑충 뛰었다.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같은 기간 27만2000원에서 36만7000원으로 높아졌다. 초등학생은 25만3000원에서 32만8000원, 중학교는 29만1000원에서 39만2000원, 고교는 28만5000원에서 41만9000원으로 각각 증가했다.
사교육 부담 증가는 여러 문제를 야기한다. 아이 낳는 걸 꺼리는 풍조를 강화하고, 노후 준비 여력을 갉아먹어 노인 빈곤을 초래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사교육 격차가 교육 격차로 이어지는 불공정을 심화시킨다. 지난해 월소득 200만원 미만 가정에선 사교육비를 11만6000원을 지출했지만 800만원 이상 가정에서는 59만3000원을 썼다. 5배 넘는 격차인데 사교육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출발선의 평등’과는 거리가 먼 사회가 된다. 문재인정부는 사교육에 완패했다. 그 원인을 짚어봤다.
교원 정책 빠진 공교육 강화
문재인정부는 공교육 강화를 통해 사교육비를 억제하려 했다. 사교육이 공교육의 보완재가 아닌 대체재로 자리 잡는 상황에서 공교육 경쟁력 강화는 타당한 접근법이었다. 하지만 공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교원 정책은 손대지 못했다.
현행 교원 정책은 구조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농산어촌 지역은 학교 규모가 작아 교육의 질을 담보하기 어렵다. 중·고교에선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운영하려면 일정 규모 이상의 학생과 교사가 필요하다. 반면 신도시 같은 인구유입지역은 과밀학급 문제와 교원 업무 증가가 고질적인 문제다. 과밀학급(28명 이상) 비율은 전국적으로는 감소 추세지만 수도권은 증가하고 있다. 전국의 과밀학급 비율은 2017년 25.4%에서 2021년 19.6%로 줄고 수도권은 59.8%에서 64.8%로 늘었다.
국가공무원인 교원은 교육부·행정안전부·기획재정부 등이 협의해 정원을 관리한다. 교사 1인당 학생 수 지표를 기본으로 타 공무원과의 형평성, 재정 여건 등 교육 외적인 요인들에 좌우된다. 따라서 현장의 교육 수요에 탄력적으로 대응이 불가능하다. 특히 새 교육과정이 도입되거나 대입 정책이 바뀌는 등 교육 정책이 변화할 때 학원들은 강사를 즉시 섭외해 강의를 상품화할 수 있지만 교원 정책이 뒷받침해주지 않는 공교육은 대응이 쉽지 않다.
게다가 사교육 강사들은 수업의 질이 떨어지면 학생들로부터 퇴출되며 강사 사회에서도 설 자리가 좁아진다. 강사들끼리 강도 높은 경쟁을 한다. 반면 공교육에선 교사 단체의 반발로 교육 당국이 학생들의 학력 측정조차 제대로 못한다. 한 대형 학원 대표는 “코로나19로 학원이 전면 비대면 상황이 됐을 때 어떤 50대 강사가 밤 11시 넘도록 남아 자기 원격수업을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여기선 낯선 풍경이 아니다”고 말했다.
5년 내내 흔들린 대입 정책
문재인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입시 정책을 뒤흔들었다. 대선 공약으로 지키지도 못할 ‘수능 절대평가’를 들고나와 수시·정시 비율 논쟁을 촉발시키더니 교육부-국가교육회의-공론화위원회 등으로 이어지는 책임 회피성 하청·재하청을 거듭하며 2년 넘게 학교 현장을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교육부 역시 “정권 초기 대입 혼란이 사교육비를 끌어올렸다”고 진단했다. 우여곡절 끝에 ‘30%룰’(모든 대학의 정시 30% 이상 선발)이 도출됐으나 이른바 ‘조국 사태’로 수시 불공정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정시 확대를 지시했고 교육부는 서울 주요 대학들의 정시 비중을 40% 수준으로 높였다.
수능 당국은 변별력 유지를 위해 ‘불수능’ 기조를 유지했다. 이른바 ‘킬러문항’을 위한 사교육 시장이 더욱 활성화됐다. 문·이과 통합형 수능, 약학대학 입시 부활 등으로 재수와 반수(대학 재학 중 대입 재도전) 사교육도 가세했다. 이런 와중에 공교육은 코로나19로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정부는 동시에 고교학점제를 추진했다. 선택형 교육과정인 학점제를 예고하고는 표준화 평가인 수능의 영향력을 높이는 엇박자 행정이었다. 그러면서 고교학점제를 뒷받침하는 대입 제도는 다음 정권 중반인 2024년 2월 발표키로 했다. 학부모와 학원가에서는 “따뜻한 아이스아메리카노 같은 정책으로 불확실성을 가중시킨다”는 비판이 컸다.
교육계에선 새 정부가 입시 현장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급격한 입시제도 변화는 지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공교육이 대응하지 못하면 사교육비만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어떤 교육 정책을 내놓든 현장에서 이를 실행하는 건 결국 교사다. 공교육의 수준은 결국 교사의 수준이다. 겉보기에 그럴싸한 정책보다는 교사 개개인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교원 정책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