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떠나기 좋은 계절이 찾아왔다. 춘정(春情)에 못 이겨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면 수정처럼 맑은 호수를 품은 ‘내륙의 바다’ 충북 제천시가 어떨까. 푸른빛이 감도는 잔잔한 물결과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산을 벗 삼아 느리게 쉬어가기 좋다.
먼저 지난해 10월 22일 개장해 제천의 새로운 ‘핫 플레이스’가 된 옥순봉 출렁다리로 간다. 길이 222m, 폭 1.5m의 무주탑 방식 출렁다리로, 수산면 괴곡리 옥순대교 남단에서 청풍호를 가로질러 명승 제48호 옥순봉을 연결한다. 2020년 6월 공사를 시작해 1년 4개월 만에 개통됐다.
옥순봉은 희고 푸른 바위들이 대나무 순처럼 힘차게 솟은 봉우리를 이루고 있어 퇴계 이황이 지은 이름이라 한다. 예로부터 제천에 속해 있었다. 조선 명종 때 퇴계가 단양군수로 부임하면서 기생 두향이의 청에 따라 청풍부사에게 옥순봉을 달라고 했다. 청풍부사가 거절하자 퇴계는 옥순봉 석벽에 단구동문(丹丘洞門)이라 새겨 이곳을 단양의 관문으로 정했다고 한다. ‘단양팔경’ 가운데 유일하게 제천에 속해 있는 이유다.
입구에 매표소가 있지만 이달 말까지는 무료다. 다음 달 1일부터 입장료 3000원을 내야 한다. 2000원은 지역 화폐로 돌려준다. 출렁다리와 연결되는 나무데크 산책로를 따라가면 포토존을 지나 출렁다리 입구에 닿는다. 출렁다리 운영 시간이 적혀 있는 안내판에는 70㎏의 성인 1286명이 동시에 지나갈 수 있도록 설계됐다고 적혀 있다.
다리에 발을 들여놓으면 흔들림에 호수로 떨어질 듯 짜릿하다.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초속 20m의 바람이 불거나 강풍주의보가 발효되는 등 기상이 악화되면 통행이 통제된다. 다리 중간쯤 유리바닥은 더 아찔하다. 오랜 가뭄에 수위가 낮아져 스릴감이 배가된다. 하지만 다리 위에서 호수를 바라다보면 청풍호의 푸른 물결이 햇살에 반짝이며 눈부신 풍경을 내어놓는다. 호수 건너 금수산이 우뚝하다.
다리를 건너면 월악산국립공원에 속하는 옥순봉 기슭에 닿는다. 408m 길이의 탐방로가 이어진다. 벌말마을이 종점이다. 아쉽게도 이곳에선 아직 옥순봉 정상으로 올라갈 수 없다. 옥순봉 정규탐방로로 가려면 사유지를 지나야 하기 때문이다. 중간에 샛길이 있지만 비법정탐방로다. 적발 시 과태료가 부과된다. 제천시는 사유지 매입을 통해 옥순봉 정상에 이르는 탐방로를 추가 조성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금수산 정상에서 북쪽 제천 방면으로 이어지는 능선상의 갑오고개와 새목재 사이에 우뚝 솟아 있는 산이 동산(896m)이다. ‘자그마한 산’이 아니라 ‘동쪽에 있는 산’이다. 청풍관아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고 해서 이름을 얻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제천시 청풍면 학현리와 교리, 금성면 성내리에 걸쳐 있다. 장군바위 낙타바위 등 동산이 품은 기암괴석과 절벽이 병풍을 이룬 절경이 감탄을 자아낸다. 등산로도 절묘한 형태의 바위를 오르내리는 길로 돼 있어 재미를 더한다. 능선에 서면 멀리 펼쳐지는 청풍호의 전경이 일품으로 다가온다.
동산 산행이 부담스러우면 바로 옆에 형제처럼 나란히 솟은 ‘작은 동산’(545m)을 찾아보자. 금수산 줄기가 시원스럽게 뻗어내리다가 청풍호로 잦아들기 직전 한번 솟구쳐 오른 봉우리다. 낮다고 얕잡아 봐서는 안 된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은 결코 작지 않다.
작은 동산의 하이라이트는 외솔봉(520m)이다. 바위를 뚫고 꼿꼿하게 선 한 그루 소나무의 기품이 의젓하고 듬직하다. 그 너머로 청풍호를 가운데에 두고 제천의 여러 산이 빚어내는 수려한 비경이 펼쳐진다. 한 폭의 산수화가 따로 없다.
청풍대교 인근 망월산(望月山)은 정상에 돌로 쌓은 망월산성을 품고 있다. 성은 ‘사열이산성’ 또는 ‘성열산’이라 불린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문무왕 13년(673)에 사열산성을 더 늘려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
옥순봉 출렁다리에서 작은 동산 가는 길 중간에 독특한 지형이 있다. 능강계곡 인근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장화 형상의 지중해 속 이탈리아 반도를 닮았다. 댐 수위에 따라 약간 달라지긴 하지만 기본적인 장화 모양은 그대로 유지한다고 한다.
편하게 산 정상에 올라 청풍호를 굽어보려면 케이블카를 이용하면 된다. 2019년 완공된 청풍호반 케이블카를 타면 청풍면 물태리에서 비봉산 정상까지 2.3㎞ 구간을 9분 만에 갈 수 있다. 비봉산 전망대에 오르면 사방이 짙푸른 청풍호로 둘러싸여 넓은 바다 한가운데 섬에 오른 듯하다.
여행메모
옥순봉 출렁다리 4월부터 유료화
청풍문화재단지·드라마 촬영장
옥순봉 출렁다리 4월부터 유료화
청풍문화재단지·드라마 촬영장
승용차로 옥순봉 출렁다리에 가려면 중앙고속도로 남제천나들목에서 빠지면 편하다. 지방도 597호선을 따라 청풍수산방향으로 달리면 청풍호가 함께한다. 지난해 개통된 중앙선 ‘KTX-이음’을 타면 서울 청량리역에서 제천역까지 1시간 소요된다. 동서울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제천행 버스로 이동한 뒤 제천터미널 앞에서 청풍행 시내버스를 이용해도 된다.
출렁다리 입구에 무료주차장과 관광편익시설(화장실 소매점 매표소 등)이 있다. 옥순봉 출렁다리는 하절기(3~10월)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동절기(11~2월)에는 오전 9시에서 오후 5시까지 개방한다. 4월부터 유료화된다.
출렁다리 주차장 건너편에서 자드락길 6코스 ‘괴곡 성벽길’(9.9㎞)을 걸어도 좋다. 두무산과 청풍호 전망대에서 청풍호를 조망할 수 있어 자드락 길의 백미로 꼽힌다.
작은동산 들머리는 교리마을이다. 이곳에도 무료주차장이 있다. 외솔봉까지는 왕복 2시간가량 걸린다. 인근 청풍랜드와 청풍문화재단지, 드라마 ‘태조왕건’ 촬영장 등을 둘러보면 좋다.
제천=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