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의 청와대와 ‘윤석열 인수위’가 충돌 조짐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고 밝히면서 내놓은 이유에 대해 발끈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말 공공기관의 인사 문제를 놓고서도 청와대와 인수위는 마찰음을 냈다.
윤 당선인이 지난 14일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 정치적 반대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신상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밝힌 것이 발단이 됐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노골적인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15일 “지금 정부에서 하지 않았던 일을 민정수석실의 폐지 근거로 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현 민정수석실은 국민신상털기와 뒷조사 등을 하지 않았는데, 윤 당선인의 발언은 그렇게 오인될 소지가 있다는 것이 분노의 핵심이다.
이 관계자는 “민정수석실 존폐는 정책적 판단의 문제로, 과거 국민의정부에서도 일시적으로 폐지한 일이 있었다”며 설명했다. 이어 “현 정부에서 민정수석실은 민심 청취, 반부패정책조정, 공직감찰, 친인척관리 등 법령에서 정한 업무와 소임에 충실해 왔다는 점을 다시 밝혀드린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양측의 신경전은 계속될 전망이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페이스북에 ‘저는 민정수석실의 흑역사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면서 청와대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김 원내대표는 “문재인 정권의 적반하장은 끝이 없는 것 같다”면서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문 정부가 안 한 일로 민정실 폐지 근거 삼지 말라’며 오히려 역정을 내는가 하면, ‘법령이 정한 업무에 충실한 소임을 다했다’며 궤변을 늘어놓기 바쁘다”고 비판했다.
청와대와 인수위는 공공기관 인사 문제를 두고도 갈등 양상을 보였다. 인수위는 청와대에 공공기관 인사에 대한 협의를 요청했지만 청와대는 기존처럼 인사권을 행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꼭 필요한 인사의 경우 저희와 함께 협의를 진행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업무 인수인계가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문재인정부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임기가 두 달도 안 남은 문재인정부가 ‘알박기 인사’를 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자 협의 요청 사실을 공개한 것이다.
김 대변인은 이어 “현 정부 안에서 필수불가결한 인사가 진행돼야 할 사안도 있을 것”이라며 “저희 입장이 현 정부와 병행되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 정부와의) 상호 협의와 함께, 업무 인수인계가 제대로 될 수 있도록 협조가 잘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인수위 측에서 공기업 인사 협의 요청이 있었는지 여부를 모른다”며 다른 목소리를 냈다.
이 관계자는 특히 “분명한 것은 문재인정부의 임기가 5월 9일까지이고, 임기 내 (문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임기 마지막 날까지 인사권은 문 대통령에게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이 관계자는 오는 31일 임기가 끝나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후임 인선과 관련해서도 “총재 임기가 문 대통령 재임 중에 완료되기 때문에 (후임 인선을 위한) 실무를 준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윤 당선인 측과 한은 총재 인선을 상의할 예정인지를 묻는 질문에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