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카 솔닛 “멈추지 말라” 한국 여성들에 조언

입력 2022-03-16 04:02
미국의 페미니즘 작가 리베카 솔닛이 15일 자택이 있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줌을 통해 한국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창비 제공

미국의 페미니즘 작가 리베카 솔닛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반페미니즘 성향을 우려하는 한국 여성들에게 “너무 좌절하지 말라. 멈출 필요가 없다. 여성들이 이뤄온 진전에 주목하라”고 조언했다.

솔닛은 자신의 회고록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창비) 한국어판 출간을 계기로 15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2016년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때 미국 여성들이 좌절감을 어떻게 이겨냈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다.

자택이 있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화상으로 간담회를 가진 그는 “트럼프 당선 때 굉장히 걱정이 많았다”면서도 “미국 전역에서 다양한 시위가 일어났고 새로운 운동과 조직화로 이어졌다. 지금은 유색인종 여성인 카멀라 해리스가 부통령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진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인 그림을 볼 것을 제안하고 싶다”면서 “여전히 여성을 공격하고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지난 5년이 아니라 지난 50년을 보면 세계는 굉장히 발전했고 여성 인권도 큰 진전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이 폐허를 응시하라’ ‘걷기의 인문학’ 등 여러 저술을 통해 세계적인 페미니즘 작가로 부상한 솔닛은 회고록을 쓴 이유에 대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죽거나 해침을 당하는 위험에 항상 노출된 사회에서 사는 것이 여성의 정신세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알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보통 여성과 마찬가지로 위험과 폭력에 노출된 채 살아왔다. 괴롭힘과 희롱을 당했고 이런 고통을 얘기할 때 아무도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았다. 사람들은 물리적·직접적 피해가 아니면 괜찮다고, 안전한 게 아니냐고 얘기하지만 피해 가능성에 항상 노출돼 있다는 것만으로도 여성들은 많은 영향을 받는다.”

솔닛은 젊었을 때 스스로를 세상에 없는 존재처럼 느꼈다며 ‘비존재’(nonexistence)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그는 “비존재는 여성으로 살아가는 조건을 아우르는 개념”이라며 “여성으로서 피해를 얘기하거나 위험을 말하면 외출하지 말아라, 총을 사라, 옷을 섹시하게 입지 말아라, 이런 충고를 들었다. 눈에 띄지 말라고, 존재하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세상에는 여전히 우리가 싸워서 쟁취해야 할 게 있고, 같이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세상은 우리가 포기하길 바라지만, 우리는 희망을 훈련해야 한다”고 전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