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 제로섬 정치의 결말

입력 2022-03-16 04:05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증오를 모두 끌어모아 당선됐다. 버니 샌더스, 엘리자베스 워런 등 진보 그룹부터 조 맨친, 마크 워너에 이르는 중도 우파까지 다 끌어안았다. 당시 민주당은 느슨한 반트럼프 연대로 묘사되곤 했다. 정치 칼럼니스트 조 콘차는 바이든이 트럼프가 아니라는 이유로 대선에서 승리했다고 평가했다. 그래서인지 취임 후 쏟아낸 주요 의제에 탈트럼프 꼬리표가 달렸다. 기후변화, 여성, 서민, 소수자 등의 키워드로 대표되는데, 한편에선 지지층 이익을 위한 정책 잡탕 같다는 평가도 받았다. 폐기 위기에 있는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 법안에는 이런 의제를 위한 자금 지원이 상당 부분 담겨 있다.

공화당은 바이든 꼬리표가 붙은 법안에 ‘무조건 반대’로 일관했다. 그사이 코로나19 재확산, 인플레이션 증가 같은 문제가 대두됐고, 공화당은 그 틈새를 파고들어 ‘바이든의 급진 정책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는 프레임을 짰다. 이런 전략이 먹혀들면서 지지율 하락으로 고전한 바이든은 “나는 좌파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전통적인 중도”라며 정체성 진화에까지 나섰다. 이제 민주당은 중간선거를 대비한 의제 재설정에 나서고 있다. 미 하원 의회진보모임 의장인 프라밀라 자야팔은 “바이든의 사회정책과 기후 법안 슬로건이 ‘해리 포터’의 사악한 악당 볼드모트처럼 돼버렸다”고 자조했다.

바이든의 지지율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제재로 반짝 상승하고 있다. 하지만 선거전문가들은 여전히 올해 민주당의 중간선거 전망을 암울하게 본다. 이런 상황이라면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정치·사회적 양극화라는 암담한 현실이 강화될 우려가 크다는 분석도 자연스레 딸려온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일일까. 국제평화를 위한 카네기기금 제니퍼 매코이·벤저민 프레스 연구원은 지난 1월 ‘민주주의가 극도로 양극화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이렇게 분석했다. “워싱턴의 깊은 정치적 분열은 입법적 타협 노력을 무력화시키고, 제도적·행동적 규범을 약화하며, 정치인들이 교착상태에 빠진 의회 밖에서 목표를 추구하도록 장려한다.”

정치인이 진영을 나눠 상대방에 대한 분노를 키우고, 포퓰리즘으로 지지층 충성도를 높이는 전략에 몰입한다는 것이다. 이런 분열은 권력의 범위를 넘어 확장한다. 양극화로 미국인은 상호배타적 정치 진영을 선택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우리 대 그들’의 사고방식에 당파적 언론도 부상했다.

저자는 “이분법적 선택은 선거 시스템에 깊숙이 박혀 사회 분열을 촉진하는 경직된 양당제를 강화했다”고 평가했다. 양당이 도시·농촌, 종교·비종교, 인종·민족 분열을 강화했다는 것이다. 정치적 성향은 다른 사회적 정체성과 점점 밀접하게 연결됐다. 마치 보수와 이대남의 결합처럼. 이제 유권자는 상대 정당을 부정적 용어로 인식하고, 국가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이는 정서적 양극화 현상까지 겪게 됐다. 저자는 이런 인식으로 인해 유권자가 지도자의 반민주적 행동을 용인하거나 수용하려는 경향을 키운다고 걱정했다. 1950년 이후 심각한 양극화 수준이 목격된 국가 50곳을 분석했더니 26개국이 민주주의 쇠퇴를 경험했고, 그중 23개국에서 권위주의가 부상했다고 한다.

“○○○만 아니면 돼.” 누구 이름을 넣어도 이상하지 않을 선거가 한국의 지난 대선이었다. 상대에 대한 증오를 다 끌어모아 신승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또다시 누군가의 분노를 증폭시킬 여성가족부 폐지를 재천명했다. 정치적 양극화로 민주주의가 쇠퇴하고 권위주의가 부상한 나라들, 제로섬 정치의 결말이다.imung@kmib.co.kr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