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사직동팀

입력 2022-03-16 04:10

1997년 10월 7일 신한국당(현 국민의힘) 강삼재 사무총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새정치국민회의 대선 후보인 김대중 총재의 비자금을 발견했다고 폭로했다. 아들 병역비리 의혹, 이인제 의원 탈당으로 지지율이 추락한 신한국당 이회창 대선 후보 측이 낸 회심의 카드였다. 하지만 김태정 검찰총장이 DJ 비자금 수사를 대선 이후로 미룬다고 발표했다. 김 후보는 1.6% 포인트 차로 이 후보를 꺾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비자금 수사 결과가 대선 전에 나왔다면 표심은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DJ 비자금은 청와대 하명 사안을 수사하는 사직동팀(옛 경찰청 조사과)의 작품이다. 이곳에 은행감독원과 증권감독원 직원 약 10명이 참여해 비자금 추적을 담당했다. 김대중정부는 은감원 증감원 보험감독원 등을 합쳐 금융감독원을 출범시켰다. 외환위기에 따른 금융체계 개편이 명분이었지만 비자금 불법사찰에 동원된 기관들 손보기라는 평이 중론이었다. 사직동팀은 한국 정치사의 물줄기를 바꿀 뻔했고 금융감독기관 통폐합에 영향을 줬다.

사직동팀은 72년 김현옥 내무부 장관이 정석모 치안본부장(현 경찰청장)에게 “미국 연방수사국(FBI) 같은 조직을 만들라”고 지시한 뒤 탄생한 ‘치안본부 특별수사대’가 모태다. 82년 종로구 사직동 건물에 입주해 사직동팀으로 불렸다. 사직동팀에 당했음에도 김 전 대통령은 취임 후 이 조직을 유지했다. 대통령 친인척과 고위 공직자 사정이라는 순기능 때문이다. 하지만 옷로비 사건 내사, 신용보증기금 대출보증 외압 의혹이 잇따라 터지자 2000년 10월 해체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최근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며 “과거 사정 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검증을 위장해 국민 뒷조사를 벌였다. 사직동팀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해체 이후에도 물밑으로 사직동팀식 사찰이 이어진 관행을 없애겠다는 의지다. 동시에 사직동팀 트라우마가 우리 사회에서 완전히 가시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진정 사직동팀을 과거 유물로 남겨야 할 때다.

고세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