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1992년과 2022년, 그녀들이 사는 세상

입력 2022-03-16 04:02

양귀자의 소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을 읽으며 몇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이 책을 처음 읽은 건 1995년 여름이었다. 신도시 비평준화 고등학교에 진학하느라 입시를 치른 후였고, 장학금까지 받을 정도로 꽤 성적이 좋았다. 하지만 고교 2학년에 진학하던 그해 많은 것이 바뀌었다. 남녀공학이던 우리 학교에는 남학생, 여학생을 대표하는 학교 짱이 있었다. 그중 ‘여짱’이 우리 반, 내 뒤에 앉았다. 우리는 금세 친해졌다. 친구들은 우리 사이를 신기하게 생각했다. 난 야자를 빼먹고 몰래 나와 교문 앞에서 나지막하게 부르릉거리고 있는 그 친구의 오토바이 뒤에 올라타 신나게 밤거리를 달려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친구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 어머니는 지독한 남편의 폭력을 피해 세 살 된 아기를 품에 안고 도망을 나왔다 했다. 그 아기가 내 친구였다. 남편의 폭력이란 무엇일까, 아기의 목숨에 위협을 느껴 도망 나오는 두려움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그때 읽은 것이 이 책이었고, 더욱 놀라웠던 건 그런 불행한 결혼생활에 고통스러워하는 여자가 너무나 많다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내 세상의 여자들, 엄마들, 아내들은 달랐기 때문이다. 신도시 비평준화 고교의 하교 때 교문은 늘 인근의 학원 차와 고급 세단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밤 11시가 넘은 시간에도 차 문을 열고 나오는 엄마들의 모습은 흐트러짐이 없었다. 친구는 그사이를 비집고 고개를 숙이며 지나쳤다. 친구 어머니는 딸을 맞으러 학교에 오는 대신 밤새 문을 여는 순대집의 주방을 지켜야 했다.

우리는 그해 내내 함께였다. 당연히 나는 교무실에 끌려가는 날이 많아졌다. 하지만 3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우리는 다른 반이 됐고, 부모님과 선생님이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레 멀어졌다. 그리고 난 대학에 들어갔다. 친구 소식을 다시 들은 건 그즈음이었다. 대학에 가지 않은 친구는 아들 하나를 낳았는데 동거남의 폭력에 시달리다가 그 아이를 데리고 도망을 나와 엄마 집으로 피신했다고 한다. 오랜만에 그 친구를 만나러 갔다. 갓 돌을 지난 아기는 너무나 예뻤다. 그래서 더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다. 난 대학 생활로 다시 돌아갔고, 소식은 또 끊겼다 이어졌다를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친구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지연이가 죽었어. 목을 맨 걸 내가 발견했어. 그 밤 어떻게 장례식장에 갔는지, 어머니를 어떻게 위로했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데, 영정 사진 속의 친구 얼굴만 20년이 지난 지금도 떠오른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이 나온 것이 1992년이다. 그때 세상에 나왔다가 조용히 사라진 한 권의 책이 더 있다. 제목도 도발적인 이경자의 ‘나는 오늘도 이혼을 꿈꾼다’. 책은 언론과 남성들의 거센 항의에 시달려 제대로 평가받을 새도 없이 절판됐다. 30여년이 흐른 뒤 이 책을 다시 불러낸 건 지금의 20대 여성 독자들이었다. 복간을 위한 클라우딩 펀드에 수많은 여성이 참여했다. 이 두 권의 책이 같은 해 출판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 해 전인 91년에야 민법이 개정돼 이혼 시 재산분할 청구가 가능해진 세상이 그녀들의 펜을 움직이게 했다. 이 시기가 여성 작가들이 본격적으로 ‘여성’에 대해 입을 연 최초의 시간이었던 셈이다.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는 내 손끝은 무거워지기만 한다. 이제 73살이 된 노년의 이경자 작가는 말한다. “전 소설로 그 시대에 화염병을 던졌어요.”

여성 억압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이 소설들이 마치 조선시대 여자들의 삶처럼 느껴져서 믿을 수 없다가도, 이것이 고작 30년 전 일이라니 하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진다. 친구 어머니와 내 친구에게 이어지는 차별과 폭력의 시간이 내 일이 아님을 안심할 수 없는 것이다. 아니, 더욱 두렵고 아프다. 그 불행의 이유가 단지 ‘여자’이기 때문이었고, 나도 그 여자이기 때문이다. 1992년 그리고 2022년 그녀들이 사는 세상은 더 좋아진 걸까. 떠난 친구가 몹시도 생각나는 밤이다. 친구야 보고 싶구나. 편히 쉬기를.

최여정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