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미루나무를 바라보는 법

입력 2022-03-16 04:06

서울 서쪽 끝자락 연의공원에 건물을 하나 짓고 있다. 건축은 대개 자연을 파괴하는 경우가 많아 저어하는데, 다행히 자연을 지키는 망루 역할의 건물이라 힘이 났다. 작년 봄 설계를 앞두고 현장을 가니, 하늘로 두 팔을 펼쳐 든 미루나무 5그루가 서 있었다. 늘씬하고 늠름한 멋진 녀석들이라 한눈에 반했다. 미루나무는 중심가지 없이 잔가지들이 길어지며 자라는 덕분에 사람이 타고 오르기 어려워 까치가 집짓기를 좋아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두 가족이나 입주해 있었다. 무조건 이 나무들이 주인공이 돼야 했다. 건축가도 깊이 공감해줘 나무를 비껴 건물을 앉히고, 건물 층층마다 다른 높이에서 높다란 미루나무를 바라보는 법을 상상해줬다.

집 근처 경복궁 동십자각 옆 아름드리 거목도 까치집을 이고 인도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데, 같은 미루나무다. 지날 때마다 슬쩍 쓰다듬으며 인사드린다. 처음 우리나라에 이주한 1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연배는 아니지만, 서울에선 최고참이다. 20세기 초부터 심어진 포플러나무 식구 중 미국에서 건너온 버드나무를 미류(美柳)나무라 했고(나중에 미루나무로 변경), 유럽(서양)에서 온 버드나무를 양버들이라 불렀다. 옛 시골 신작로에 꼭 싸리 빗자루를 거꾸로 세워놓은 듯한 높다란 나무들이 양버들이다.

나무도 유행이 있어 이후 친척뻘인 현사시, 은사시 등 사시나무도 많이 심었지만 암나무에서 봄마다 솜털 달린 씨앗이 날려 알레르기를 일으킨다고 오해해 대거 베어냈다. 그러곤 한동안 잊었다. 21세기 들어 여기저기 레트로가 유행이더니 다시 심어 재발견한 곳이 선유도공원이다. 이곳엔 미루나무와 양버들 둘 다 산다. 미루나무는 잔디마당에 줄지어 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한강변 데크를 뚫고 올라온 양버들은 하늘마저 꿰뚫을 기세다. 이후 연의공원을 비롯한 우리 주변, 특히 한강과 지천 둔치 곳곳에 심겨져 하늘 높이 자라고 있다. 우리가 바라봐주길 기다리면서.

온수진 양천구 공원녹지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