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두둔하던 中, 우크라 전쟁 장기화에 고심 커진다

입력 2022-03-15 04:02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러시아가 중국에 군사 장비 및 경제 원조를 요청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와 뉴욕타임스(NYT)가 13일(현지시간) 당국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미국 정부는 중국이 러시아를 지원할 경우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에다 미국 등 서방의 대러 제재가 효과를 내면서 러시아를 두둔해온 중국 입장이 난처해졌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CNN, NBC 방송 인터뷰에서 “우리는 중국이 러시아에 물질적, 경제적 지원을 하는 범위에 대해 주시하고 있다. 이는 우리의 우려 사항”이라고 말했다. 또 “제재 회피를 도우면 분명히 대가가 있을 것을 중국에 전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주미 중국대사관은 즉각 “그런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며 “중국의 최우선 과제는 우크라이나의 긴장 상황이 통제 불능 상태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이 사악한 의도로 악의적 허위 정보를 퍼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러시아 대통령실) 대변인은 관련 질문에 “러시아는 중국의 도움 없이 우크라이나에서 모든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충분한 군사적 역량을 갖고 있다”며 부인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중국은 표면적으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중립적 입장을 취했지만 실상은 러시아를 편든다는 지적을 받았다.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지난 7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기자회견에서 “국제 정세가 아무리 험악해도 중·러 양측은 포괄적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끊임없이 전진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속사정은 복잡해 보인다. 지쿤 주 버크넬대 교수는 미국 정치전문지 더힐 기고에서 중국이 대내외 제약 때문에 중재를 위한 주도적 역할을 꺼린다고 분석했다. 그는 “미·중 관계가 악화한 상황이어서 중국은 우크라이나 문제에 깊이 관여할 의사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또 “시진핑 국가주석이 올 가을 20차 당 대회에서 공산당 총서기 3선 연임을 확정할 예정”이라며 “혼란스러운 위기에서 중재가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고 중재에 실패하면 위상만 훼손된다”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 구조대원들이 14일(현지시간) 러시아 공습으로 화재가 난 수도 키이우(키예프) 오볼론 지역의 아파트에서 한 남성을 고가 사다리로 구조하고 있다. 구조대는 해당 공격으로 최소 1명이 사망하고 여러 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AP연합뉴스

반면 왕휘야오 베이징 중국국제화정책연구센터 소장은 NYT 기고를 통해 전쟁 장기화는 중국에도 이익이 되지 않는 만큼 중국이 협상 중재자로 나설 유인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 정부가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않더라도 개별 기업과 은행이 더욱 중요한 시장의 반발을 피하기 위해 러시아 개입을 줄일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정부는 미국보다 유럽과의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더 선호하는 분위기다. 시 주석은 지난 8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화상 회담을 갖고 “프랑스와 독일 그리고 유럽과 소통하고 당사국의 요구에 근거해 국제사회와 함께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설리번 보좌관과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정치국원은 14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만나 우크라이나 사태와 북핵 문제 등을 논의했다. 미측은 중국이 대러, 대북 제재에 동참할 것을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러시아와 북한의 합리적인 안보 우려를 먼저 해소해야 한다며 제재를 통한 문제 해결에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