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손자에게 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아버지는 가족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전쟁터도 두렵지 않았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피츠버그에 사는 윌리엄 허버드는 무려 3만리를 내달려 우크라이나에 갇힌 19살 딸과 생후 8개월 손자를 무사히 탈출시킨 심경을 13일(현지시간) 미 보스턴 현지 매체 WCVB에 전했다.
지난달 러시아의 침공 우려가 커지자 허버드는 우크라이나 키이우(키예프) 무용대학에 재학 중인 딸 에이슬린과 지난해 태어난 손자 세라핌을 데려오고자 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행정적 문제에 봉착했다. 지난해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려 에이슬린이 가정분만을 하면서 세라핌은 국경을 넘기 위한 여권, 출생증명서 등 서류를 제때 발급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허버드는 직접 우크라이나에 건너가 친자 확인 검사를 통해 세라핌의 신분을 확인하는 절차를 밟고자 했으나 무산됐다. 미국으로 돌아온 허버드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고군분투했으나 결국 가족들이 빠져나오지 못한 상태에서 전쟁이 발발했다.
차량이 없어 자력으로 대피할 수 없는 딸을 데려올 방안을 고민하던 허버드는 결국 자신이 다시 우크라이나에 가는 방법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항공편은 이미 막힌 상태였고 그는 홀로 험난한 가족 구출 작전에 돌입했다.
그는 이달 초 비행기를 타고 터키 이스탄불을 거쳐 폴란드 바르샤바에 도착했다. 폴란드 남부에 도착한 뒤 도보로 국경을 넘고 차를 얻어 타 르비우까지 이동했다. 열차를 타고 키이우에 들어간 그는 그곳에서 딸과 재회할 수 있었다. 그가 가족을 구하기 위해 이동한 거리는 약 1만㎞에 달했다.
천신만고 끝에 목적지에 도착한 그는 딸과 손자를 데리고 피란길에 올랐다. 수천명 규모의 피란민 행렬에 섞여 서쪽으로 이동한 그는 11일이 돼서야 무사히 우크라이나-슬로바키아 국경에 도달할 수 있었다.
허버드는 “이런 상황에선 어떤 아버지라도 나처럼 행동했을 것”이라며 “가족을 돌보는 것, 그게 아버지들이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