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해외보다 1500만원가량 비싼 ‘김치 프리미엄(김프)’이 붙었던 국내 비트코인 가격 거품이 빠지고 있다. 한때 비트코인 원화 가격이 달러 가격보다 저렴한 ‘역(逆) 김치 프리미엄’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금리 인상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 연이은 악재에 국내 투자심리가 유난히 급속하게 얼어붙은 영향이다. 일각에서는 차기 정부의 가상자산 정책이 나오면 시장 분위기가 반전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다.
암호화폐 데이터 분석 사이트 크라이프라이스에 따르면 14일 글로벌 코인 거래소 바이낸스와 국내 업비트·빗썸 간 비트코인 가격 차이는 0%대에 머물러 있다. 지난주에는 한때 0.2~-0.8%까지 떨어지며 역 김프 현상을 보였다. 비트코인의 역 김프는 최근 보름새 종종 기록됐다. 국내 비트코인 가격이 해외보다 낮아진 것은 지난해 11월 이후 4개월 만이다. 이더리움과 리플 등 알트코인도 대부분 김프 0% 초반대로 가격 차이가 거의 없다.
김프는 국내 투자자들의 유별난 코인 사랑을 보여주는 지표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김프는 7~10%를 기록했고, 4~5월에는 20%대까지 치솟았다. 암호화폐는 거래소마다 매매 가격이 달라 같은 코인이라도 값에 차이가 있다. 넘치는 국내 수요에 투자자들은 해외보다 비싼 값을 주고 코인을 구입해왔다. 김프가 많이 껴있을 때는 차익 거래를 노리고 국내에서 해외 거래소로 암호화폐를 빼돌리는 환치기가 극성을 부렸다.
이랬던 김프가 ‘실종’된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잇따른 금리 인상 여파로 과열됐던 국내 수요가 크게 위축됐기 때문이다. 전쟁이 예상보다 길어지고 물가가 급등하면서 암호화폐 같은 위험자산에 대한 선호도가 낮아지고 있다. 한탕을 노리던 2030 코인 투자자의 투심도 꺾였다.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의 24시간 거래 대금은 12조원에 달했지만 이날은 3조7500억원으로 3분의 1로 줄었다.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의 ‘디지털 자산 공포-탐욕 지수’는 41.22로 공포 단계(40)를 겨우 상회하고 있다. 이 지수는 낮을수록 공포가 크다는 의미다.
향후 암호화폐 시장 분위기는 각국의 제도화 정도에 따라 좌우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에서는 차기 정부가 가상자산에 우호적 정책을 내놓으면 투심이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선거 기간 암호화폐 투자자 보호와 산업 육성을 약속했다. 구체적으로는 코인 투자 수익 5000만원 비과세, 디지털산업진흥청 신설, 코인 발행(ICO) 허용 등이 공약으로 제시됐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암호화폐 진흥을 내세웠던 만큼 관련 정책들이 무리 없이 추진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미국도 연방정부 차원에서 암호화폐를 공식적인 자산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지난 9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디지털 자산 행정명령은 추세 반등의 발판으로 해석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디지털 달러(CBDC)의 필요성을 검토하고 소비자·투자자 보호 방안 등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해당 행정명령 직후 비트코인은 8% 넘게 급등했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