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기적의 3일, 무함성 콘서트

입력 2022-03-15 04:10

해외 아티스트들이 내한공연에서 가장 감동받고 돌아가는 포인트는 한국 관객의 열정적인 호응이다. 그 중심에는 떼창과 함성이 있다. 한 소절만 시작해도 객석을 가득 메운 팬들이 한목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르고, 거대한 함성과 가수를 향한 구호가 넓은 야외 스타디움을 뒤흔든다. 그런데 떼창과 함성이 없는 콘서트가 열렸다.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의 사흘. 함성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기적 같은 공연이었다. 팬들은 질서 정연했다. 혹시라도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에게 피해가 갈까 봐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했다. 공연장에는 두꺼운 종이를 접어 부채처럼 만든 클래퍼를 두드리는 박수 소리만 가득했다. 박자가 딱딱 맞는 간결하고 묵직한 울림이었다.

지난 10일과 12~13일 총 3일간 잠실 주경기장에서 열린 방탄소년단(BTS)의 대면 콘서트 얘기다. 코로나19 방역지침 상 전체 6만5000석 규모 공연장의 23% 정도인 1만5000명만 허락됐다. 전체 입장 인원의 5%에 달하는 방역관리 요원이 배치됐다. 함성·떼창·기립 응원은 모두 금지됐고, 팬들은 누군가의 말대로 왕자를 만나기 위해 목소리를 잃어버린 인어공주들 같았다. 그래도 코로나 이후 국내에서 열린 최대 규모 콘서트였다. BTS가 서울에서 팬을 만난 건 무려 2년 반 만이었다. 팬들의 함성이 사라진 여백을 채우기 위해 BTS 7명은 데뷔 초 무대처럼 뛰었다.

멤버 슈가는 “우리도 이제 데뷔 10년 차인데 10년 동안 한 번도 없었고 앞으로 10년 동안에도 없을 유니크한 무함성 콘서트”라고 말했다. 이번 공연은 1, 3회차 온라인 라이브 스트리밍과 2회차 극장 ‘라이뷰 뷰잉’을 통해서 생중계됐다. 자막도 통역도 없었지만 전 세계 246만5000여명이 콘서트를 실시간으로 즐겼다. 공연장에 수어 통역사가 배치돼 노랫말 등이 수화로 전달된 것도 인상적이었다. 함성 없는 콘서트는 낯설고 희귀한 풍경이었지만 이 또한 역사에 남을 공연이리라. 언젠가 ‘우리 이런 일도 있었지’라고 말할 수 있는 그날도 멀지 않은 듯하다. 어느새 성큼 다가온 봄날처럼.

한승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