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의 이코노 아웃룩] 물가 비상 외국, 돈줄 죄는데… 대선 끝 한국은 대출 푸는 분위기

입력 2022-03-15 04:05
게티이미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공식 출범하기 전인데도 가계대출 규제 완화 등 윤석열 당선인의 공약 이행을 위한 정책이 여기저기서 거론되고 있다. 특히 현 정부가 나서서 자신들의 정책을 U턴시키려는 ‘웃픈’ 상황까지 연출되고 있다. 정부는 대선 표심을 가르는 중요한 변수가 부동산 정책이었다며 관련 시행령을 고쳐 재산세와 보유세 부담을 대폭 경감시켜주겠다는 계획까지 세웠다.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총량 정책에 밀려 마이너스 통장, 신용대출 조이기에 나섰던 시중은행들도 우대금리 부활 등을 통해 이에 편승하려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대선 끝 한국의 생뚱맞은 잔치 분위기


대선이 끝난 한국의 이런 완화 분위기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고유가 등 인플레에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돈줄 조이기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상황과 대비되며, 생뚱맞기까지 하다. 그간 세차례 인상 이후 2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 금리를 동결한 한국은행이 결과적으로 잘못된 시그널을 보낸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올들어 지속적인 하락으로 주식시장의 조정국면에 시달리고 있는 시장 참가자들의 관심은 향후 경기가 스태크플레이션(고물가 속 경기후퇴)에 진입할지 여부에 쏠린 듯하다. 전쟁이라는 지정학적 사태를 핑계로 미 연방준비제도(연준)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긴축의 고삐를 느슨하게 잡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담겨 있는 듯하다.

그러나 중앙은행들은 ‘전쟁에 따른 경기침체 우려에도 불구하고’ 긴축 쪽에 더 무게 중심이 쏠려 있다. 지난주 통화정책회의를 연 유럽중앙은행(ECB)이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에 속도를 내는 등의 ‘매파’적 통화정책을 발표한 것은 서프라이즈였다. 러시아산 가스 등의 의존이 높아 완화적 스탠스를 유지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봤던 세간의 예상을 과감히 깼기 때문이다.

이는 이번주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미 연준(17일)을 비롯해 대만·영란은행(17일), 일본은행(18일) 행보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미 연준이 예상대로 0.25%포인트를 인상한다면 코로나19 이후 2년만에 제로금리를 탈출한다는 의미가 있다. 파월 의장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때 마다 인상을 예고할 지, 상황에 따라 향후 인상폭 확대를 시사할지가 관심이다. 금리인상 외에 양적긴축(QT)에 대한 입장 변화도 주목된다.

영란은행은 이번이 3번 연속 인상 기록을 남기게 되는데 무려 0.75%포인트 인상 가능성이 거론된다. 대만은 2년만에 첫 금리인상을 단행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일본은행은 동결 가능성이 크지만 경기전망은 하향할 것으로 예측된다.

경기방어보다 물가잡기 올인하는 중앙은행들


미국 미시건대가 발표한 3월 소비자신뢰지수는 전월대비 3.1포인트 하락한 59.7로 시장기대(61.0)를 밑돌았다. 데이터가 집계되기 시작한 1978년 이후 이 수치가 60을 하회했던 때는 1978년, 2008년, 2011년 세차례다. 황수욱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유가하락세를 보인 2011년을 제외하면 나머지 사례의 경우 유가 상승이 소비심리를 위축시키고 실제 소비감소로 이어져 경기 침체를 부각시켰다는 공통점을 지닌다”면서 “소비심리 위축이 시차를 두고 소비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3월 미시건대 조사중 1년 후 인플레 기대는 8.0%로 1981년 이후 가장 높게 나타났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경기 둔화의 골이 깊어질 수도 있음을 예고하는 것으로 주목된다. DB금융투자 문홍철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최근의 금융시장 움직임은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 위기 직전과 유사하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2년만기 국채와 10년만기 국채의 수익률 역전 조짐이 보이는데다, 최근 한국의 경우 환율까지 오르면서 외국인 채권시장 이탈우려가 제기되고 금리가 일시적으로 급등한 현상 등을 그런 조짐을 보이는 사례로 제시했다.

그럼에도 중앙은행들의 통화정책 무게중심이 경기방어보다는 물가를 잡기 위한 긴축으로 쏠리는 이유는 뭘까.

흔히 고유가에 따른 스태그플레이션을 대표하는 상황으로 1,2차 오일쇼크 상황을 소환해 대비시킨다. 2차 오일쇼크 이후 40년가까이 지난 지금 원유소비금액이 전세계 GDP의 절반으로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현재 중앙은행들의 통화정책, 특히 긴축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를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해 보인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은 1973년 1차 오일쇼크 이전부터 재할인율과 단기이자율을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등 긴축 기조를 유지했으나 유가충격이 오자 경기침체를 우려해 단기 이자율을 낮추는 확장정책을 시행했다. 이에 두 나라는 두자릿수 고인플레를 경험했고 미국은 2년, 영국은 4년이 지나서야 위기 이전 수준으로 진정시킬 수 있었다. 양국은 1979년 2차 쇼크 때도 다시 완화정책을 펴는 우를 범하면서 다시 뒤늦게 긴축정책으로 선회한 끝에 1982년에야 인플레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대신증권은 “독일과 일본은 오일쇼크 후에도 긴축 기조를 유지함으로써 인플레를 상대적으로 낮게 통제할 수 있었다”면서 “일관된 긴축정책 수행 여부가 스태그플레이션기의 물가 안정을 좌우했음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더해 중앙은행들이 물가관리에 더 신경을 쓰려는 것은 20여년간 고착화돼왔던 저물가에 대한 인지편향(bias)이 깨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물가가 결국 하향 안정화될 것이라는 논리가 작용해 ‘금리를 올려도 많이 올리지 못할 것’이라는 기대에서 ‘고물가로 소비를 비롯한 경기가 위축될 수 있으나, 금리를 올려 물가를 먼저 잡아야 한다’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