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아이들 희생 없이 깨끗한 물 선물하려면

입력 2022-03-15 04:02

매년 3월 22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물의 날’이다. 그동안 인도, 네팔, 방글라데시, 르완다 등 국제구호개발사업 현장에서 일하면서 가장 낯설었던 경험은 ‘물’에 대한 것이다. 한국에선 누구나 물에 접근할 수 있고, 내가 거주하는 집에서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물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사업 현장에선 물이 집 밖에 있는 풍경이 더 흔했고, 물을 얻기 위해 짧게는 몇 분에서 길게는 몇 시간을 걸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물은 삶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도상국에서는 물에 대한 접근성이 여전히 낮다. 르완다에서는 인구의 57%만이 30분 이내 거리의 안전한 식수에 접근할 수 있다. 가족들이 사용할 물을 구하기 위해 희생되는 건, 주로 여아들의 시간이다. 가족 수에 따라 자주 물을 길으러 가야 하는 경우엔 학교의 출석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 과정에서 안전사고 등 여러 위험 상황에 처하기도 하고, 그나마 어렵게 얻은 물이 깨끗하지 않아 수인성 질병에도 쉽게 노출된다.

다행히도 국제기구와 NGO 단체 등에서 진행하는 식수지원사업을 통해 물에 대한 접근성은 점점 나아지고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사업 주체가 여럿이다 보니 지역 내 식수시설에 대한 공유와 통합적인 관리가 제한적이라는 사실이다. 현지 정부는 물론 지역 주민들에게조차 식수원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공유되지 않다 보니 애써 만들고도 방치되는 시설마저 존재했다.

굿네이버스 르완다에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1년부터 ‘데이터를 활용한 식수 접근성 강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GPS를 통해 지역 내 식수시설을 파악한 후 시설의 위치, 종류, 작동 현황 등 세부 정보를 ‘mWater(엠워터)’라는 애플리케이션에 입력해 지속 관리하는 사업이다. ‘mWater’는 180개국에서 사용하는 무료 온라인 데이터 관리 플랫폼으로 세계보건기구(WHO), 미국 국제개발처(USAID), 워터에이드(WaterAid) 등 여러 단체에서 유용하게 쓰고 있다.

이렇게 모인 데이터는 지역사회에 공유되는데, 이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의 참여 또한 필수적이다. 지역 주민들은 ‘수자원위원회’를 조직해 지역사회 식수 문제 해결을 위해 주도적으로 나섰다. 지역 주민들은 ‘mWater’ 정보 입력 과정에 직접 참여했으며, 입력한 정보를 토대로 현장 조사와 모니터링을 실시해 기존의 식수시설이 관리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모니터링 결과는 보수가 필요한 식수시설을 발견하거나, 식수시설 설치가 필요한 지역을 선정하는 데 사용된다.

지난해에는 르완다 냐마가베 지역 수자원위원회 회원 206명이 굿네이버스로부터 지원받은 태블릿 60대를 이용해 지역 내 900개가 넘는 식수시설을 ‘mWater’ 앱에 입력하고 모니터링을 진행했다. 이 중 노후되거나 고장으로 작동하지 않는 5개 식수시설을 보수했고, 식수대·핸드 펌프 등 4개의 새로운 식수시설을 설치해 9000명 이상의 주민이 안전한 식수시설에 접근할 수 있게 됐다. 정부와 지역사회의 적극적인 참여 덕분에 사업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올해는 사업 참여 지역을 확대해 더 많은 아동과 지역 주민에게 깨끗한 물을 제공할 계획이다.

물의 접근성 개선을 위한 노력이 계속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굿네이버스는 매년 ‘Good Water Project’ 캠페인을 통해 해외 39개국 212개 사업장에서 식수위생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캠페인의 주제는 ‘물 지킴이’이다. 물을 구하기 위해 더 이상 아이들의 권리와 소중한 시간이 희생돼서는 안 된다. 많은 사람의 참여와 관심으로 지구촌 곳곳에서 더 많은 물이 지켜지고, 깨끗한 물을 선물할 수 있길 바란다.

김민정 굿네이버스 르완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