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그가 이번에 바뀐 이유

입력 2022-03-15 04:08

이번 대선 결과 어떻게 보셨습니까. 뿌린 대로 거둔 게 아닐까 싶어. 윤석열 후보가 당선될 거라고 예상하셨습니까. 예상했지, 정권교체 여론이 그렇게 높았으니까. 아마 나 같은 사람들 꽤 많았을걸.

어르신 같은 사람이라면? 예끼, 이제 갓 50 넘은 나한테 어르신이라니. 아, 예, 죄송합니다. 선생님 같은 분은 어떤 사람인가요. 그동안 쭉 민주당 계열 후보만 뽑아주다가 이번에 더불어민주당에 투표 안 한 사람들이지. 계속 민주당 쪽으로 투표하셨나요. 1991년 지방선거 때부터 소위 ‘비판적 지지’로 민주당 계열에 투표했는데 이번 대선에선 관뒀지. 왜 그러셨나요. 더 이상 비판적 지지가 정치개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거지. 그동안도 못마땅한 게 많았지만 국민의힘 계열보다는 낫지 않겠나 하고 투표했는데 회의가 오더군.

언제까지 비판적 지지를 지켰나요. 2020년 총선 때까지. 근데 민주당이 지난해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는 걸 보고선 깨달았지. 아, 좀 다를 거라 기대했는데 이 당도 똑같구나. 그저 국민의힘보다 한 1m 왼쪽에 서 있는 것뿐이구나. 비판적 지지가 정치개혁에 밀알이 될 거라 기대했는데 그저 스스로 자위한 것에 불과했다는 걸 깨달은 거지.

40, 50대가 가장 진보적인 세대잖아요. 비슷한 성향인 분들이 많았을 텐데 뭐라 하는 이들은 없었나요. 친한 친구들은 좀 의외네, 실망이다, 이 정도였는데 어떤 이들은 너 같은 X들 때문에 이재명이 떨어지고 윤석열이 당선됐다고, 반동세력 아니냐고 하더군. 뭐라고 답하셨나요. 피식 웃고 말았지. 사실 속으로는 그동안도 사사건건 편을 나누고, 내 편이 아니면 모두 친일파 적폐세력으로 몰아붙이더니 대선 지고 나서도 그 모양이냐 하고 싶었는데 그냥 웃고 말았지.

그래도 국민의힘보다는 민주당이 진보적이잖아요. 예전엔 그렇게 믿었는데, 언젠가부터 민주당이 진보의 가치를 망친 장본인이라는 생각이 들더군. 정치인들이 진보를 언급할 때 요즘 젊은이 상당수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아나. “멸공!”이라 하더군. 그 친구들이 몰라서 그러는 게 아냐. 오만과 무능, 내로남불 정치인들이 말끝마다 진보 운운하니 비아냥거리는 거지. 진보의 가치가 이렇게 희화화된 가장 큰 책임이 나는 민주당에 있다고 보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국민의힘보다 1m 더 왼쪽에 서 있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차라리 그간 비판적 지지 대신 다른 정당에 투표했다면 다당제 안착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도 되더군.

‘여성가족부 폐지’가 논란이 되면서 n번방 실태를 추적했던 박지현씨를 민주당 비대위 공동위원장에 임명했는데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지 않을까요. 앞으로 잘 한다면 그렇겠지만 아직은 좀 평가하기에 이른 듯해. 이유는요. 몰라서 묻나. 성추행 가해자였던 소속 단체장 때문에 치르게 된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려고 정당의 헌법인 당헌까지 바꾸는 꼴이 기억에 선명한데. 당에서 여성계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사람들조차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이라고 부르는 가당찮은 모습도 봤고. 그저 박지현씨가 먼저 영입됐던 여성계 인사들과는 다른 모습을 계속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네.

비판적 지지든 뭐든 그래도 30년간 투표했던 정당에 대한 애정은 남아 있으신 것 같네요. 그저께 조응천 의원이 잘 얘기했더군. 반론을 용납하지 않는 당 내부 문화가 정착돼 강고한 진영 논리로 덮이면서 민주당은 개혁적이지도 도덕적이지도 않은 세력으로 인식됐다고. 여전히 선제 타격보다는 공존과 평화를 먼저 얘기해야 한다고 믿는 나 같은 사람들조차 왜 대선에서 민주당을 외면했는지 조 의원이 제대로 짚긴 했는데 과연 그 당이 바뀔 수 있을까에 대해선, 글쎄, 잘 모르겠네.

정승훈 디지털뉴스센터장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