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대선 이후 법조계의 화제는 단연 좌천을 거듭했던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검사장)이 다시 칼을 얻겠느냐 하는 것이다. 한 검사장은 윤석열 당선인과 평검사 때부터 여러 권력형 비리를 수사해 왔다. 몰아치는 수사 스타일에 대한 호불호는 갈리지만, 수사 성과 측면에서는 검찰 안팎의 인정을 받는다. 인사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의 행보를 거론하는 관측이 벌써부터 분분하다. 그가 차기 서울중앙지검장으로도 유력하다는 관측, 대통령의 측근 검사에게 핵심 직책은 부적절하다는 우려가 뒤섞인다.
13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사법연수원 4기수 차이인 윤 당선인과 한 검사장의 인연은 지금은 간판을 내린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검사장은 서울중앙지검 초임 검사 때 SK 분식회계 사건 수사에 투입됐고 이른바 ‘차떼기’ 진술을 받아냈다. 이 사건이 2004년 대검 중수부의 대선자금 수사의 단초가 되면서 중요 진술을 얻은 한 검사장이 자연스레 중수부에 합류했다. 중수부에는 한 검사장 등이 기업들을 수사하면 그를 토대로 정치인들을 조사하는 다른 팀이 있었다. 이 정치인 조사 팀에 윤 당선인이 있었다.
둘의 중수부 인연은 2006년 현대자동차 비자금 수사 때에도 이어졌다. 미국 유학을 다녀온 한 검사장이 중수부에 다시 합류한 것인데, 사정을 아는 이들은 당시 윤 당선인 등 중수부 주축들이 한 검사장의 기업 수사 능력을 높이 산 결과의 발탁이라 본다.
윤 당선인이 윗선과 불화한 소신 검사로 알려져 있지만 한 검사장도 ‘말 잘 듣는 검사’가 아닌 몇몇 일화가 있다. 현대차 수사 당시 중수부에서는 신속 압수수색 착수 방침이 섰는데 한 검사장이 “준비할 시간이 1개월은 필요하다”고 맞섰다. 이때 한 검사장과 윗선 사이에서 윤 당선인이 일종의 조율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타협을 거쳐 수사 실무선에 20일가량의 준비 시간이 주어졌다.
한 검사장이 부산지검에서 전군표 당시 국세청장을 수사할 때에는 평검사였던 그가 총장실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 사표를 내겠다”고 맞섰던 것으로 전해진다. 서청원 전 한나라당 의원을 수사할 때는 국회에서 석방이 결의되자 홀로 담당 의사를 찾아가 정확한 건강 상태를 진술받은 뒤 회기 이후 재구속했다. 이런 때마다 검찰 내부에서는 ‘너 때문에 검찰이 힘들다’는 식의 불만이 나오곤 했다. 윤 당선인과 한 검사장을 아는 이들은 “둘의 생활은 안 닮았지만 강수를 두고 ‘치받는’ 모습은 닮았다”고 평하기도 한다.
한 검사장은 중요한 사건 수사에는 ‘명분이 필요하다’고 강조해 왔다고 그의 후배들이 전했다. 윤 당선인은 한 검사장의 수사 모습을 두고 평소 “너는 무슨 독립운동하듯 수사를 하느냐”고 말했다 한다. 윤 당선인이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한 검사장을 ‘거의 (수사를) 독립운동처럼 해온 사람’이라고 비유했던 건, 그의 앞뒤 안 따지는 태도를 애둘러 탓한 데 좀더 가깝다는 해석도 있다.
중수부 계보로 이어지게 된 두 사람은 이후 국정농단 특검에서 만나고, 또 서울중앙지검장과 3차장, 검찰총장과 대검 반부패부장으로 호흡을 맞췄다. 한 검사장은 새 정부 첫 검찰 인사에서도 중용될 가능성이 높다. 벌써부터 서울중앙지검장 후보로 그를 꼽는 이들도 있다. 윤 당선인 역시 후보 시절 한 검사장을 두고 “검찰 인사가 정상화하면 중요한 자리에 갈 것”이라고 언급했다.
결국 한 검사장이 중용될 것인지 아닌지는 윤 당선인의 ‘검찰 독립’ 공약, 검찰 수사권 축소 속 특별수사의 역할 등까지 아우르는 복잡한 문제로 평가된다. 다만 좌천돼 있으면서 현 정부와 공공연히 대립했던 당선인의 측근 검사가 이후 중요 사건 수사권을 행사하면 정치적 독립성·중립성 훼손에 대한 비판과 함께 수사 불신의 불씨를 남기게 된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한 중견 검사는 “검찰을 앞세워 전 정권을 사정하는 관행 고리는 누군가가 끊어야 한다”고 말했다. 법조계는 윤 당선인의 선택을 궁금해 한다. 윤 당선인은 2020년 한 검사장이 부산고검으로 향하게 됐을 때 “검사가 가는 자리마다 소중하지 않은 곳은 없다”고 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