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정치적 중립성 논란을 낳았던 선별 입건 제도를 폐지했다. 출범한 지 1년2개월 만에 ‘스폰서 검사’ 사건을 재판에 넘기면서 검찰의 기소독점도 깼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공수처 대수술을 예고한 상황에서 공수처가 존재 이유를 내보일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수처는 14일부터 고소·고발 접수와 동시에 사건을 입건하도록 하는 개정 사건사무규칙을 시행한다고 13일 밝혔다. 공수처가 선택적 수사를 한다는 논란이 이어지자 규칙 손질에 나선 것이다. 검찰과 마찰을 일으켰던 ‘조건부 이첩’ 조항도 삭제했다. 공수처는 출범 초기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사건’을 검찰에 돌려보내면서 기소 여부는 추후 공수처가 판단할 수 있다고 주장해 갈등을 빚었다.
출범 이후 첫 기소도 최근 이뤄졌다. 공수처는 지난 11일 김형준(사진) 전 부장검사를 1093만5000원의 뇌물수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앞서 검찰이 한 차례 무혐의로 판단한 사건이지만 공수처는 검찰의 결론을 뒤집었다. 지난해 1월 출범한 이후 제대로 된 수사 성과를 내지 못했던 공수처가 수사실력을 입증해 보일 승부수를 띄운 셈이다.
공수처의 쇄신 움직임과 ‘1호 기소 사건’ 재판의 향방에 따라 공수처의 입지가 달라질 것이란 게 법조계의 공통적인 분석이다. 수도권의 한 판사는 “헌법재판소가 처음 생겼을 때를 생각해보면 공수처가 논란을 겪고 정비하는 과정은 새로운 기관이 겪어야 하는 과도기로도 볼 수 있다”고 했다. 김 전 부장검사 사건 역시 법원에서 유죄 판단을 받아낸다면 공수처 회의론을 어느 정도 잠재우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공수처도 정치적 부담이 크지 않으면서 입증에 자신 있는 사건을 1호로 기소하려는 고민이 많았을 것”이라고 했다.
반면 공소유지가 어려울 경우 공수처 존립에 대한 의문은 한층 거세질 전망이다. 윤 당선인도 대선 후보 당시 고위공직자 부패사건 수사에 대한 공수처의 우월적·독점적 지위를 규정하는 공수처법 24조를 손보겠다고 공언했었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