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소멸 거부 당당한 도전… 꿈나무 양성 ‘거룩한 땅’ 소망

입력 2022-03-15 17:46
원동교회 전경. 하종웅 목사는 청도를 청소년을 위한 꿈의 요람으로 가꾸는데 소망을 두고있다.

“나는 부흥회에 참석하여 은혜 받아 목사가 된 것이 아니고 지독하게도 싸우는 교회 속에서 불같은 성령을 받고 목사가 되었다” 올해 64세. 도심서 30년간 목회와 국내외 집회를 다니며 은혜롭게 사역을 하다가 고향교회를 못 잊어 화려한 도심목회를 뒤로하고 고향교회로 돌아와 올해로 63년 된 경북 청도읍 원동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하종웅(아래 사진) 목사 이야기이다.


하 목사는 목사로 소명받은 계기가 남다르다. “1973년도가 지나면서 15살 되던 때 주일 저녁예배 시간에 강대상에서 목사님이 설교를 시작하는데 갑자기 교회 중직자 한 분이 강단에 올라가 목사님의 멱살을 잡고 주먹으로 치니 목사님이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지셨다. 순간 나는 예배당 오른편 뒷자리에 앉아 있다가 그 모습을 보며 너무 충격을 받아 무서워 통곡하기 시작했다. 한참동안 통곡하는데 온몸이 뜨거워지며 성령의 불세례 같은 일이 일어났다. 내 온몸과 영혼과 그리고 세포 하나까지 동서남북에서 동시에 들리는 세미하고도 가장 강력한 천둥번개 같은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나의 기름부음 받은 종이 상하는구나. 어찌할꼬... 어찌할꼬... 어찌할꼬 내 종을 위하여 기도하라’ 순간 목사님을 위해 기도하라는 소리에 나는 내 부모가 불신의 부모이기 때문에 기도를 해본적도 없고 할 줄도 몰랐다. 그러나 기도하는 순간 너무도 신기한 영적인 세계가 열리며 교회와 하늘이 맞닿은 사닥다리가 놓여 있는 것이 보이고, 성도들의 얼굴 중에 눈만 보이는데 한결같이 다 소경이 되어 서로가 누군지를 알아보지 못하고 싸우고 있었다”며, “당시 대부분 사람들이 시험에 들어 교회가 시끄러웠는데, 하나님은 불신 가정의 어린 소년 하종웅에게 성령을 부어주셔서 목사로 세워 오늘까지 복음을 전하고 집회를 인도하게 하셨다”고 했다.

하 목사에게 어떤 사역을 중점적으로 해왔는지 물었다. “나의 사역은 기도사역이다. 기도하는 사람은 죽어도 그 사람이 남긴 기도는 죽지 않는다.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는 목사는 죽지만 그 목사가 교회를 위하여 남긴 기도는 죽지 않고 때를 따라 응답하며 역사한다. 자식을 위하여 기도하는 부모는 죽어도 부모가 남긴 기도는 죽지 않고 살아있다. 기도자의 수명은 100년이지만 남긴 기도의 수명은 천만년이다. 우리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고 했다.

하 목사는 1998년부터 국내외 집회를 다니며 기도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해왔다. 하나님이 인도하는 대로 순종하며 온 마음을 다해 설교하고 찬송하면 놀랍게도 많은 은혜가 임하고 깊은 회개의 역사들이 교회마다 일어났다고 했다.

교회 설립 초기 작성된 각종 서류들.

하 목사는 지금까지 받은 은혜 중에 가장 큰 은혜는 세례를 주고 받을 때라고 했다. 마을에 85세 된 할아버지 한분이 병원에서 퇴원하셨는데, 심방하여 찬송가 438장 ‘내 영혼이 은총입어’를 열 번 가까이 부를 때 불신자였던 할아버지 마음이 열리고 믿음이 들어가 ‘아멘’을 외치고 예수를 영접하여 세례를 베푼 일이 감동이었다고 했다. 또한 하 목사가 자신이 세례를 받을 때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세례를 받으려고만 하면 몸이 심하게 아파 세례를 받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1976년 4월 4일에도 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갑자기 몸이 아프기 시작하여 황달에 걸려 눈과 얼굴이 노란색으로 변해 사람들이 볼까봐 밖에 나가지도 못했다고 한다. 주일이 되어 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도저히 받을 수 없을 것 같아 토요일에 목사님께 가서 얼굴을 보여주고 받을 수 없다고 했더니 목사님이 “세례받지 못하게 하는 시험같으니 죽더라도 세례받고 죽어야 한다”며 주일에 세례를 받으라고 했다. 드디어 주일에 무릎을 꿇고 세례를 받는데 목사님께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하는 순간 온 몸이 전기에 감전되는 듯 하고 온 우주와 지구의 물을 머리에 전부 쏟아 붓는 것을 느끼며 끝없는 눈물이 쏟아졌다고 한다. 세례를 받고 너무 기쁘고 감사해서 기차를 타고 대구 시내 꽃집에 들러 가장 아름다운 꽃을 사다 강단에 꽃꽂이를 했다. 그때 마침 예배당에 들어오는 담임목사님과 마주쳤다. 목사님은 어린 하종웅을 끌어안고 눈물로 축복해 주셨다고 한다. 안고 눈물로 축복기도를 해주신 목사님은 강단에서 주먹으로 무차별하게 폭행당한 그 목사님이셨다.

하 목사는 농촌교회가 위기라고 했다. “지금 농촌교회는 다음 세대가 문제다. 농촌교회는 다음 세대가 없다. 주위의 초등학교들이 폐교가 되듯이 교회도 학교처럼 사람이 없어 문을 닫을 때가 올까 염려된다. 50년 전에는 800명이나 되던 초등학교 학생들이 지금 전교생 수가 50명이라고 한다. 도시교회가 문을 열고 품앗이라도 해야 시골교회가 버틸 수가 있는 실정이다. 자립 문제도 심각하다. 농촌교회의 목회자들의 심정을 누가 알겠는가. 지금 목회자 생활도 문제이고 은퇴 후에도 문제다. 갈수록 교회는 고령화되어가고 있으니 희망과는 거리가 먼 현실이다. 농촌교회에 대한 지혜와 대안이 필요한 상황이다”고 했다.

하 목사는 목회하면서 가장 큰 아픔이 평생 곁에서 내조하던 아내를 천국으로 떠나보내던 때라고 했다. “나에게 있어서 12년 전 50세의 나이로 먼저 천국 간 아내와 이별하는 순간이 가장 힘들었다. 가족이 아침에 집을 나가고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온다. 오늘 오지 않으면 내일은 오고, 여행을 가더라도 이삼일 지나면, 다음 날에 돌아오는데 아내는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고 몇날 며칠 1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지금도 임종의 순간이 생각난다. 사랑하는 딸 찬미가 아내의 손을 잡고 ‘어머니는 세상의 어머니가 아닙니다. 나의 어머니이며 목사님의 사모입니다. 사모님이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천국으로 먼저 편히 가세요. 저희들도 어머니를 뒤 따라 가겠습니다, 아무걱정 하지마시고 편히 가세요’. 아내는 딸 찬미의 손을 꼭 잡고 천국에 갔다. 아내와 이별은 아직도 통증으로 가슴에 남아있다. 그러나 부활의 소망과 천국의 영광이 있음을 감사하고 찬양한다”고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이어 “아내의 투병 중에 수많은 감동이 있지만, 곤지암 만나교회 김광탁 목사님을 잊을 수가 없다. 아내의 5년 동안의 투병생활에 모든 것을 아끼지 않고 사랑을 베푼 분이다. 아이들의 4년 대학입학금과 등록금, 교육비, 자동차 등 모든 것들이 교회와 목사님의 사랑이었다. 목사님은 나에게 요나단 같다. 생명의 은인이시다. 그 많은 사랑을 갚을 수 없어 지금도 기도로 그 사랑의 빚을 갚고 있다”고 했다. 또한 딸 찬미 씨에게도 미안하고 감사하다고 했다. 찬미 씨는 서울 홍익대학교 미대를 합격하고도 엄마 곁에서 끝까지 지키며 간호해야 한다며 입학을 포기하고 계명대학교 패션디자인학과에 입학하여 4년 장학생으로 다니게 되었다고 한다.

원동교회의 2021년 추수감사절 모습.

하 목사는 청도의 지역적 특성을 살려 다시 한 번 남은 생애 소명을 불태우려는 열정을 가지고 기도하는 비전이 있었다. “원동교회는 청도 땅에 있는 교회다. 道不拾遺(도불습유) 길에 물건이 떨어져 있어도 남의 것이면 줍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청도의 정신이다, 원동교회를 통하여 청도가 거룩한 땅이 되기를 소망한다.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을 공급하는 원동교회가 되고 싶다. 원동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고 싶다. 청도에 남산기도원이 있다. 기도원을 통하여 한국교회와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는 용사들을 길러내고 싶다. 또한 청도를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꿈의 요람으로 만들고 싶다. 이 사역을 위해 배영주 목사가 추진하고 있는 (사)글로벌나눔네트워크 부설 위즈덤인터내셔널의 청소년적성찾기 사역에도 동참하고 협력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12일에는 청도군 화양읍 유등마을에서 ‘다음세대 적성찾기운동 청도본부 출범식’을 가졌고, 28일에는 국내 최초로 30여개 나라 청소년들이 참여하는 ‘국제청소년 적성찾기대회’가 경북 청도에서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그리고 미얀마를 위한 선교사역에도 큰 열매를 맺고 싶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받은 놀라운 은혜와 은사를 책으로 출판하여 열방을 향하여 복음을 전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비전을 말했다.

하 목사는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나와 1991년 목사 안수를 받고, 교회사역과 미국과 캐나다를 비롯한 국내외 집회를 인도해 왔다. 현재 미얀마 페닐 신학교 총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경북 청도읍 원동교회(합동)에서 남은 생애 은퇴까지 기도하며 소명을 이어가기 위해 힘쓰고 있다.

가족으로는 아들 하태준 씨와 미스코리아 대구로 선발되어 활동했던 하찬미 씨가 있다.

김변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