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약자와의 동행, 공포의 공감

입력 2022-03-14 04:08

40대 여성이 발달장애가 있던 8세 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됐다. 이 아이가 숨진 날은 지난 2일 초등학교 입학 예정일이었다. 여성은 혼자 이 아이를 낳고 키워온 친모였다. 경찰이 “여동생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오빠의 신고를 받고 출동해 모자를 발견한 곳은 반지하 월세방이었다. 이들은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아 생활해 왔다고 했다. 이날 한 50대 여성도 중증 발달장애인인 20대 딸을 살해하고 자신도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가 “내가 딸을 죽였다”며 경찰에 자수했다. 그 역시 이혼하고 홀로 딸과 살아오며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더욱이 그는 갑상샘암 말기 환자로 거동이 불편해 기초생활수급비와 딸의 장애인수당 등이 수입의 전부였다. 집에서는 “다음 생에는 더 좋은 부모를 만나거라” 등이 쓰인 유서도 발견됐다.

같은 날 전해진 두 사건은 놀라울 만큼 유사했다. 더욱이 처음도 아니다. 장애가 있는 아이를 혼자 키우며 살아오다 생계가 어려워 극단적 선택을 저지르는 일은 일종의 ‘클리셰’로 느껴질 정도로 반복돼 왔기에 그날 사건은 더욱 무거웠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비대면 상황이 늘어나는 와중에 이 같은 비극은 더 자주 발생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장애 가족의 돌봄 책임을 나누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성토하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하지만 역대급으로 치열했던 대선 막바지 선거운동이 한창인 와중에 벌어진 이 사건들에 관심을 기울이거나 응답한 주자는 없었다.

대선 직전 각인된 또 다른 사건은 택시 타고 귀가하던 스무 살 여대생이 달리는 택시에서 뛰어내렸다가 뒤따라오던 차에 치여 숨진 사건이었다. 지난 7일 숨진 여대생의 유가족이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공개한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보면 고인은 당시 남자친구에게 택시기사가 모르는 곳으로 이동하고 말을 걸어도 답이 없다면서 극도의 불안감을 호소했다. 이후 택시기사에게 세워 달라고 했지만 답이 없자 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불과 몇 분 만이었다. 경찰 조사가 진행 중이지만 블랙박스 등을 보면 택시기사에게 어떤 고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달리는 차에서 평범한 학생이 뛰어내리는 선택을 한 건 순간적 공포가 그만큼 컸다는 뜻이다.

공포는 합리적이지 않다. 찾아오는 순간 짓눌린다. 밤늦은 택시 안에서 왠지 모를 낌새에 불안한데 하필 휴대폰 배터리가 다 돼 꺼져 있는 것이 들킬까 거짓으로 통화하는 척했던 어느 날이 떠올랐다. 이 사건에서 오히려 놀란 건 그 여대생의 공포감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멀쩡히 길을 걷다가도 엄습하는 ‘일상적 공포’가 주로 여성들에게만 해당한다는 사실의 재확인이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유달리 시끄러웠던 주제,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여전히 약자인가 아닌가’에 대한 답일 듯도 했다.

대선 직전 벌어진 사건들을 다시 언급하는 건 역대급 비호감 선거를 치른 윤석열 당선인이 지금이라도 꼭 눈여겨보길 바라서다. 마침 윤 당선인이 선거운동 시작부터 강조한 메시지는 ‘약자와의 동행’이었다. 안타깝게도 선거 과정은 이 메시지가 무색하게 어느 대선보다 더 약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선 위치에서 약자를 규정하고 그에 해당하는지 평가해 갈라치는 일이 난무했다. 정책 대결 대신 비호감 대결이 난무했던 탓, 유달리 치열했기에 표 대결이 급했던 탓이라고 치자. 이제 선거는 끝났고, 통치의 시간이 시작됐다. 약자와의 동행은 그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구조 속에서 느끼는 두려움과 절망, 공포를 공감하는 데서 시작된다. 진짜 약자와의 동행을 시작할 것을 기대한다.

조민영 온라인뉴스부 차장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