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국제음악제(TIMF)가 임기 5년의 새로운 예술감독으로 작곡가 진은숙(61)을 선임한다고 지난해 10월 발표했을 때 국내 음악계는 일제히 환영했다. 세계 현대음악계의 슈퍼스타인 진 감독이 한국 클래식 음악계의 든든한 조력자가 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실례로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은 2006~2017년 상임 작곡가를 역임한 진 감독과 작업한 음반 ‘진은숙: 3개의 협주곡’(2014년 DG)이 국제적인 음반상을 다수 수상하는 쾌거를 거뒀다. 진 감독이 서울시향에서 예술감독을 맡아 기획한 ‘아르스 노바’의 작곡 마스터 클래스에선 김택수 신동훈 최재혁 등 국제무대에서 주목받는 작곡가들이 잇따라 나왔다. 제20회 통영국제음악제가 오는 25일 개막하는 가운데 독일 라이프치히에 머물고 있는 진 감독과 11일 전화 인터뷰를 했다.
“솔직히 통영국제음악제 예술감독 제안을 받고 1년간 고민했어요. 서울시향을 그만둔 이후 작곡에만 몰두할 수 있었던 시간이 정말 좋았거든요. 하지만 남편이 옆에서 ‘당신은 젊은 음악가들과 어울릴 때가 가장 행복해 보인다’고 설득해 마음이 움직였어요. 무엇보다 저 스스로 한국의 젊은 음악도에게 도움이 돼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진 감독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 명문 오케스트라가 곡을 위촉하는 세계적인 작곡가이지만, 각별한 후배 사랑으로도 유명하다. 한국의 젊은 연주자와 작곡가들에게 음악적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베를린 자택에 초대해 밥도 해 먹인다. 핀란드 출신 남편 마리스 고토니(노르웨이 스타방에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예술기획 책임)가 아내에게 통영국제음악제 예술감독직 수락을 강력히 권유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진 감독은 결국 2018년 1월 서울시향을 떠난 이후 4년 만에 다시 한국에서 공식 직함을 맡게 됐다.
“통영국제음악제를 맡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한국의 재능있는 젊은 음악가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서입니다. 작곡가와 관련해서는 이미 지난해 가을 통영국제음악재단 아카데미를 통해 14명을 선발했습니다. 이들 가운데 3명의 작품이 올해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선보입니다.”
통영국제음악재단 아카데미는 당초 작곡가를 4명 선발할 예정이었지만 지원자가 120명 넘게 몰리자 선발 인원을 늘렸다. 진 감독은 예술감독으로서 축제 사무국과 협의해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20회를 맞은 올해는 ‘다양성 속의 비전’(Vision in Diversity)이란 주제 아래 2주간 고전과 현대 클래식 레퍼토리를 아우르는 것은 물론 국악·영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진 감독은 “오는 21일부터 접종완료 해외입국자의 자가격리가 면제된다는 정부 발표가 나와서 기쁘다. 코로나19 때문에 해외 연주자 섭외가 어려웠던 것은 물론이고 자가격리 규정으로 내한이 이뤄지지 못하면 프로그램 변경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번 축제의 출연진은 세계적인 거장부터 신진까지 면면이 화려하다.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와 소리꾼 이희문 등 국악계 아티스트도 참가한다. 진 감독은 “올해 주제도 그렇지만 통영국제음악제는 다양성을 추구함으로써 한국 사회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려 한다. 클래식 음악 외에 한국 문화를 보여주는 국악도 포함되는 게 당연하다”면서 “앞으로도 매년 국악을 포함하려 한다. 최근 국악계의 독창적인 아티스트들을 눈여겨보고 있다”고 밝혔다.
2002년 윤이상음악제에서 시작한 통영국제음악제는 20년간 발전을 거듭하며 아시아를 대표하는 음악제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처음엔 봄에만 열렸으나 2006년부터 윤이상콩쿠르와 묶어서 가을 시즌도 열고 있다. 작곡가 윤이상을 둘러싼 논란으로 보수단체의 공격을 받아 축제 명칭이 바뀌고 박근혜정부 때는 블랙리스트에 오른 윤이상평화재단과 함께 국비 지원이 끊기는 수난도 당했다.
“통영국제음악제는 해외에도 많이 알려진 축제에요. 많은 연주자가 통영을 ‘윤이상의 도시’로 기억합니다. 그동안 많이 발전했지만 앞으로 세계 최고의 연주자와 악단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축제로 성장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축제에 대한 안정적 지원과 공감대가 필요합니다. 한국에선 예술에 정치가 변수로 작용하는 게 유감이에요. 한국도 이제 선진국인 만큼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예술 분야는 외풍 없이 탄탄하게 이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