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대통령 취임 초기는 왜 위험한가

입력 2022-03-14 04:06

모든 대통령은 성공을 꿈꾼다. 성공의 기준이 다를지언정. 그럼에도 많은 대통령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실패의 늪에 빠진다. 특히 취임 초기는 위험한 시기다. 막 탄생한 새 권력 앞에선 누구도 ‘그건 아니다’라고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힘이 있을 때 밀어붙여야 한다’는 논리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다 엉뚱한 결정을 내리고, 절차를 밟고 숙의를 거쳐 진행할 일을 서두르다가 돌이킬 수 없는 실책을 낳기도 한다.

미국 존 F 케네디 정부 출범 초기가 그랬다. 1961년 초 이제 막 취임한 대통령 케네디 앞에 작전보고서 하나가 제출됐다. 극비 훈련을 거친 쿠바 망명자들의 기습 상륙작전으로 며칠 안에 쿠바 카스트로 정부를 전복시킬 수 있다는 ‘그럴싸한’ 내용이었다. 케네디 정부는 작전을 지원하기로 결정한다. 결과는 참담했다. 100여명의 사상자를 낳고 1000명 이상이 생포돼 포로 송환을 위해 쿠바 정부에 5000만 달러가 넘는 금액을 지불해야 했다.

미국의 피그스만 침공 사건은 집단사고(group thinking)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그런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기까지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막상 일이 벌어지자 하나같이 ‘사실 나는 반대였다’는 식으로 발뺌했다. 그래서 ‘실패한 정책은 아버지가 없다’고 한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책임은 오로지 대통령의 몫이다. 대통령은 그런 자리다. 참모들이 보고를 안 해서, 혹은 잘못해서 그렇게 됐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피그스만 사건 이후 케네디는 대통령의 판단력에 대한 의구심 어린 시선 속에 쿠바 정부 전복을 위한 비밀작전의 정당성 논란까지 더해져 엄청난 압력에 시달렸다. 스스로 쿠바 문제는 그가 짊어진 ‘가장 무거운 정치적 십자가’라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게다가 야당인 공화당은 쿠바에서의 실패를 그다음 해 중간선거의 최대 쟁점으로 삼으려 했다. 그런 상황에서 케네디는 다시금 쿠바 핵 위기의 벼랑 끝에 서게 된다. 소련이 미국 해안에서 불과 120여㎞ 떨어진 쿠바에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최대 사거리 3500㎞의 중거리탄도미사일 기지를 건설하려 한 것이다.

그나마 피그스만의 실패가 반면교사가 됐을까. 케네디는 성과에 대한 조급함과 집착을 버리고 먼저 위기대응팀을 꾸렸다. 위기대응팀 내의 논쟁은 치열했다. 여기에 참여한 대통령 특별보좌관은 그 안에 매파와 비둘기파가 있다고 언급했고, 이후 그 말은 정부 내 의견 차이를 보이는 그룹을 지칭하는 용어로 자리 잡았다. 그만큼 대통령이 불러 모은 사람들은 처음부터 다른 소리를 냈고, 초기의 불협화음은 토론을 거쳐 ‘무시론’과 ‘공격론’ 대신 ‘봉쇄’라는 하나의 결론으로 모아졌다(그레이엄 앨리슨·필립 젤리코의 ‘결정의 엣센스’). 케네디는 모든 가능성과 경우의 수를 검토하고, 이견을 모아 위기의 순간에 대응해 핵전쟁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누구나 케네디처럼 실패의 교훈으로 성공적인 걸음을 내딛는 것은 아니다.

임기 초 대통령에게는 그럴듯한 보고서가 홍수처럼 쏟아진다. 그 안에는 무수한 ‘피그스만 침공 계획’이 들어 있다. 이해관계자나 정부 각 부처로서는 기회의 시간이 열린 셈이기 때문이다. 그럴싸한 보고서에 숨겨진 지뢰를 찾지 못하면 결과는 참담한 실패일 뿐이다. 그런 위험을 피하려면 ‘아니다’라고 말할 공간을 허락해야 한다.

오래전 일이지만 김대중 대통령 취임 초기에 종종 이런 질문을 받았다. “대통령이 들으시면 언짢으실 것 같은데 보고해야 하나” “답이 없으신데, 어찌해야 하나” 등등. 요컨대 대통령과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걱정이었다. 필자를 비롯해 대통령을 아는 이들의 답은 늘 “아무런 걱정하지 말고 어떤 말씀이든 드리라”는 것이었다. 지레 겁먹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문제될 건 없었다. 설령 대통령의 심기가 잠시 불편하더라도 그런 보고가 아예 없었다면 훗날 대통령이 느낄 열패감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기에.

대통령이 진정 두려워 할 것은 반대나 비판이 아니라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 만장일치의 순간이다. 그 침묵의 순간을 지배하는 것은 이견을 제기하는 데 대한 두려움 또는 대통령의 판단이나 결정을 존중한다고 핑계 대는 참모들의 무책임이다. 그것은 결국 대통령의 실패, 국가적 불행으로 이어질 뿐이다.

박선숙 전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