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별의 순간은 언제였을까.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이 표현을 언급한 건 지난해 1월이었다. 헌정 사상 최초로 검찰총장 정직 사태가 벌어진 직후였다. 김 전 위원장은 “특정한 상황에서 갑자기 뭔가 이뤄지는 사람에게 별의 순간이 왔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조국 사태를 기점으로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과 대립했던 윤 당선인은 몇 달 뒤 총장직을 내려놨고, 야권 대선 주자로 단숨에 떠올랐다. 그리고 정치 입문 8개월 만에 별의 순간을 잡았다.
정권에 반기를 든다고 그런 순간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기원은 박근혜정부로 거슬러 간다. 2013년 10월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특별수사팀장이었던 윤 당선인은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나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고 발언해 강골 검사로 이름을 알렸다. 그 말이 허언에 그쳤다면 오늘의 당선인 윤석열은 없었을 것이다. 정권과 진영을 가리지 않는 행보가 바탕이 됐다. 총장 재직 시 과거 국정원 특별수사팀에서 팀장과 부팀장으로 한솥밥을 먹었던 박형철 당시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을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 등의 피의자로 기소했다. 한때의 동지라도 예외는 없었다. 정치 입문 후 여러 비판과 논란에도 그가 공정과 상식이란 표어를 내걸 수 있었던 이유다.
윤 당선인 취임 이후 검찰 내 윤석열 사단이 돌아온다는 말이 벌써부터 파다하다. 그와 친분이 있는 인사들이 검찰 요직을 장악할 것이라는 우려의 뉘앙스가 깔려 있다. 그간 적폐 수사에서 손발을 맞췄던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이 대표적이다. 그 외에도 윤 당선인과 종과 횡으로 엮인 인사들 명단이 지라시 형태로 돌아다닌다. 일부는 기본적인 인사 정보도 잘못돼 있지만 그런 오류마저 새 정부 인사에 대한 불안감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대통령 취임 후 검찰 고위직 인사가 빠르게 이뤄지면 거대 야당을 중심으로 검찰 공화국이 부활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쇄도할 것이다.
사실 윤 당선인 본인이 이런 상황을 모를 리 없다. 자신이 겪었던 일들이기 때문이다. 되레 누구보다 잘 안다고 보는 것이 맞는다. 멀쩡하게 수사 잘하던 검사를 좌천시키면 어떻게 되는지, 수사력과 공직자로서의 자세에 대한 고려 없이 전 정권 적폐를 청산한다는 명분으로 인사 원칙을 파괴하면 어떻게 되는지 말이다.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하라고 해놓고 정작 그 칼날이 정권을 향할 때 그것을 왜곡하고 부러트리면 어떤 결과를 낳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윤 당선인은 검찰 독립성을 강조하며 법무부의 수사지휘권과 예산권을 내려놓겠다고 공약했다. 법 개정 사안이라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지만 공약대로라면 정부가 검찰을 견제할 장치는 사실상 인사권만 남게 된다. 윤 당선인은 그간 청와대와 여권의 검찰 개혁 방향에 대해 “부패완판(부패를 완전 판치게 한다)”이라며 반대 의견을 냈다. 지난 정부에서 무너진 인사 원칙을 복원하는 작업은 불가피하지만, 과거 정부에서 그런 식으로 했으니 우리도 똑같이 하겠다는 논리라면 국민을 설득하긴 어려울 것이다. 야당이 다수당인 상황에서 인사청문회 문턱을 넘을 동력은 국민적 지지밖에 없다.
윤 당선인은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국회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으로 60명 넘는 여야 의원에 대한 고발장을 받았다. 그러자 그는 “정치가 할 일을 검찰에 떠넘긴다”며 사건을 모두 관할인 서울남부지검으로 넘겨버렸다. 불필요한 정치적 오해를 방지한다는 차원이었다. 검사가 아닌 대통령 윤석열은 어떨 것인가. 과거 그의 말처럼 권력이 아닌 국민만 바라보는 검찰로 거듭나게 할 것인가. 수사와 인사는 공정해야 하면서 또한 공정해 보여야 한다. 지난 정부에서 해바라기 검사들을 중용한 결과가 어떤 방식으로 돌아왔는지는 당선인 본인이 더 잘 알 것이다. 특정한 상황에서 갑자기 뭔가를 이루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그것을 놓는 때를 생각하는 일이다. 별의 순간을 즐기기에 5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양민철 사회부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