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버스를 몬다
코로나가 극성을 부려도
나는 버스를 몬다
내가 맡은 건 죽으나 사나 버스 한 대다
내가 맡은 국경은
오로지 버스 한 대다
세계가 이미 다 뚫렸는데도
나에겐 버스 한 대가 나의 세계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은 보루가
내 버스 한 대라 생각하고
나는 오늘도 버스를 몬다
내가 맡은 건 커다란 것도 아닌
눈에 표 나는 것도 아닌
그저 마스크를 안 쓰면 안 태워주는 일
평상시에 욕하는 입을 틀어막는 일
대놓고 무시하던 입들에 꼭
마스크를 씌우는 일
고성방가를 즐기던 입에
방음벽을 설치하는 일
그게 신이 나서
나는 버스 한 대를
철두철미하게 지킨다
-서수찬 시집 '버스 기사 S시인의 운행일지' 중
시인은 인천에서 시내버스 기사로 일하며 시를 쓴다. 영화 ‘패터슨’의 주인공처럼. 이번이 두 번째 시집이다. 일상은 버스 한 대 속에 갇혀있지만, 시는 세계와 국경을 바라본다.